흑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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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주는 힘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일이다. 이렇게 입에 담을 수 있어서, 내 업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시마야는 주머니가게다.

3번째로 큰 가게의 주인 이헤에에겐 조카딸 오치카가 와있다.

꽃다운 나이의 이 어린 조카딸에겐 그늘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진 아이.

미시마야 주인의 조카딸이지만 아가씨로서가 아닌 하녀로 와있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할 시간이 없기에 오치카는 부지런히 일만 한다.

 

미시마야에는 흑백의 방이 있다.

주인 이헤에가 손님과 바둑을 두는 방이다.

어느 날 손님을 청해놓고 이헤에 부부는 급한 일로 출타를 하게 되었다. 그들을 대신해 오치카는 손님을 맞게 된다.

그 손님은 처음 본 어린 오치카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비밀을 말한다.

그 이후 이 어린 조카딸의 그늘을 없애주기 위해 고심하던 이헤에는 흑백의 방에서 괴담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낸다.

그리고 괴담을 들려주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치카에게 듣게 한다.

 

사람들이 가져온 이야기는 슬프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고, 세상에 있을 법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모두가 사실이었다.

 

감추고 있는 슬픔은 서로 통하는 법이다.

 

 

평소에는 잊으려 애쓰며 살았던 어두운 이야기들이 흑백의 방에서 들어주는 사람 오치카 앞에서 술술 나온다.

만주사화 꽃에 얽힌 슬픈 이야기

사람을 잡아먹는 저택의 비밀

병으로 인해 떨어져 살던 누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연리지처럼 누이와 동생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데...

사람의 영혼을 가두는 거울.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서로가 필요한 것들을 이어주는 장사꾼의 정체는?

 

기이하고 괴이하면서도 슬픈 이야기들이 참 매력적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괴이한 이야기들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 읽게 되었다.

이렇게 습하고 어둑한 날에 읽는 괴담은 아주 색다른 맛이었다.

 

미야베 미유키

일명 미미여사.

내게 이 미미여사의 첫 글은 <눈물점>이다.

사실 <눈물점>을 읽다가 이 이야기가 시리즈라는 걸 알고는 첫 이야기부터 읽어야겠다 싶어서 <흑백>을 읽기 시작했다.

오묘한 분위기가 여태껏 읽었던 일본 소설과 다르게 다가왔다.

사회파소설을 잘 쓰는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괴담집도 엄청난 필력으로 썼다.

 

대놓고 무서운 것보다 괜히 으스스하고 생각할수록 오싹해지는 이야기들이라 문득 생각나서 소름 돋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들엔 따뜻함이 스며있다.

 

"정이다. 사람의 정 말이야. 어머니도 말씀하지 않았니? 곤란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척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돕는 마음을 잊지 마라.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본의 풍습과 문화도 배우면서 멋진 이야기도 수집하게 되는 작품들.

그 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정과 사랑 의리가 스며있다.

그래서 아무리 무섭고 섬뜩한 이야기여도 결국에는 따뜻한 기억만 남게 된다.

 

오치카는 들어주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오치카는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자신처럼 슬프고도 잔인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걸.

그러나 그들 모두는 그걸 이겨내고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으며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저 무서운 이야기들의 나열이라고 생각했던 괴담집을 읽으며 살아가는 묘미를 배운 기분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닫고 자신의 말만 하는 세상에 '경청'함으로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오치카의 모습은 배울 점이 많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세심하게 상대가 배려 받고 있다는 걸 못 느끼게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여러모로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걷어내는 중이다.

 

우리네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낯설지만 익숙하고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의 매력을 읽어가는 중이다.

 

미시마야 변도 괴담 시리즈를 읽기 아주 좋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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