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
김정배 지음, 김휘녕 그림 / KONG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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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사과꽃 풍경과 대비되는 전쟁의 상흔.

아름다운 그림 사이사이로 전쟁의 숨은 상처들이 보인다.

 




"탕"

예쁜 표지의 그림책을 넘기며 첫 장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글자는 한 글자였다.

소리 없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커다란 소음으로 증폭된다.

아름다운 표지 뒤에 숨은 '탕' 소리는 마치 평화 속에 몰래 숨어든 전쟁의 민낯처럼 보였다.





한밤중에 울린 총소리는 엄마와 내 손보다 빨랐다.

 

평화롭던 마을은 총소리에 무너졌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입을 가렸다.

아이는 아빠를 닮은 작은 손으로 엄마의 손을 꼭 쥐여준다.

 

눈을 가리면 못 본 게 되고

입을 막으면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게 되는 걸까...

 

 

 

몇 발의 총성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 하나는 밤마다 자주 마음을 다쳤다.

 

 

총소리와 함께 사라진 아빠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알 길 없는 아이는 사과꽃이 피기만을 기다린다.

사과꽃이 피면 아빠가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아이가 태어나던 해 아빠가 심은 사과나무는

해마다 흰 꽃을 피우고 빠알간 열매를 맺는다.

해마다 찾아오는 사과꽃.

그러나 아빠의 약속은 무한정의 기다림일 뿐...

 

마을 사람들은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면 가장 예쁜 사과 하나씩을 골라 우물에 씻어내고

절대 쪼개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려 사과의 볼을 힘껏 깨문다.

그것이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예쁜 꽃 그림과 사과꽃이라는 제목에 그림책이라는 포장으로 그저 예쁜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펼쳤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과꽃은 마치 벚꽃처럼 화려하게 느껴졌고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과꽃에서 전쟁의 포악함을 보았다.

 

새콤달콤한 사과의 맛이 그래 그랬구나...

새콤한 그리운 마음과

달콤한 즐거운 추억이

바로 사과의 맛이었구나...

 

가까운 과거에

생사도 모르는 가족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낸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흰 사과꽃에 점점이 박혀있는 거 같다...

 

그들의 기다림이 열매를 맺어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으로 기다림의 보상이 되었구나...

이제 사과를 그냥 허투루 쪼개지 말아야겠다.

어릴 때처럼 통째로 볼을 깨물어 먹어야겠다.

사과꽃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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