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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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동시대를 사는 느낌

 

 

학교를 마치던 해 정희와 도망갈 약속을 어기던 일, 별로 마음이 내키지도 않는 것을 어머니가 몇 번 타이른다고 그냥 시집갈 궁리를 하던 일, 생각하면 아무리 제가 한 일이래도 모두 지랄 같다.

 

 

지하련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었다.

그의 글도 처음 읽었다.

1912년 생인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라고 나름 상상해 봤는데 시대적 복잡함 속에서 지금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의식은 여전함으로 이어져왔다.

 

<결별>의 형예는 나이 많은 남편과 결혼해 살고 있다.

분가를 해서 시집살이를 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자꾸 속이 시끄럽다.

서울 남자랑 결혼한 정희.

반갑게 맞아주는 정희와는 다르게 조금 복잡한 형예의 마음.

 

그 마음 무엇인지 알 거 같다.

결혼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때를 넘기지 않으려 설득당해서 한 결혼.

남편은 늘 "아무것두 아닌 것 가지고.... 내 암말도 않으리다." 라고 말한다.

 

암만 생각해도 이게 아닌 성싶다. 맞장구를 치는 것도 이게 아니고, 당황해하는 것도 이거여서는 못쓴다. 아무튼 도통 이런 게 아닌 것만 같다.

 

 

제목이 결별이니 형예의 속뜻을 모르지 않겠다.

형예는 완전히 혼자인 것을 깨달은 후에 어떻게 달라질까?

 

지하련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지식인들이다.

그 당시 상류층 여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 궁금하다면 지하련의 작품을 보랄밖에.

비교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자유로왔던 거 같다.

<체향초>의 삼희가 병을 이유로 친정에 그리 오래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삼희의 병은 친정에 내려왔기에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도 존재하는 오라버니들.

공부는 많이 하였으나 변변한 직업은 없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이러고저러고 살며 치열하지 못하면서 나름 치열한 오라버니들.

<제법 엄숙한 얼굴>로 오라버니라는 걸 뽐내는 그치들에 대한 이야기는 임솔아에게서 제이로 환생한다.

무엇 하나 자랑할 거 없으면서 자랑질로 하루를 소비하는 인생.

듣는 사람이 말을 돌려도 그 돌려차기에서조차 자신의 자랑거리를 찾아내는 말뿐인 삶.

인종차별을 반대하면서 인종차별을 당연히 하는 제이.

결국 장식장 밑에 들어가서 "여기 있어요."를 부르짖는 로봇 청소기를 끄집어 낸 건 영애다.

 

1930~40년대 여성의 대우와 현재 여성의 대우는 거기서 거기다.

말만 늘어놓는 남자들의 뒤치다꺼리는 모두 여자들이 한다.

아니라고 입에 거품 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임솔아 작가님이 지하련 작가와 짝이 되어 고민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제법 엄숙한 얼굴>을 잘 그려줬다.

지하련 작가의 통통 튀고 신랄하면서도 다정한 마음을 알게 되어 좋다.

묻힌 작가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이념이 우선이 되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이 대한민국 땅에서 아픈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글들을 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지하련의 글에서 그 어떤 사상도 찾지 못하겠다.

그저 시대를 앞섰던 여성들의 생각을 읽었을 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말뿐인 남자들 곁엔 늘 행동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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