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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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왜 <경찰 살해자>일까?

그건 이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목이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살해자는 실제 경찰 살해자가 아니니까...

 

 

 

일반적으로 마르틴 베크는 살육당하거나 훼손된 시체를 조사하는 일이라면 머리카락 한 올 세우지 않고 태연히 해냈다. 속으로 불편함을 느꼈다손 해도, 귀가해서는 낡은 코트를 벗어던지듯이 그 기분을 떨칠 수 있었다. 한편 그는 뭔가 제대로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고 느끼면 몹시 괴로워했다. 시그브리트 모르드와 폴케 뱅크손 문제가 그랬다. 유죄로 낙인찍혔고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던 남자. 이것은 린치나 다름없었다.

 

 

 

1973년이 배경인 마르틴 베크 시리즈 아홉 번째 이야기 <경찰 살해자>

4편 <웃는 경관>을 읽고 꽤 시간이 흘렀다. 9편에서의 베크는 어딘지 모르게 유해 보이고 편해 보인다.

그 사이 그는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 책임자가 되었다.

 

안데르슬뢰브에서 한 여자가 실종된다. 그리고 그 범인으로 옆집에 사는 폴케 뱅크손이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이런 한적한 시골 마을의 실종 사건에 마르틴 베크가 출동한 이유는 아마 유력한 용의자 폴케 뱅크손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 첫 이야기인 <로재나>의 범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복역을 마치고 안데르슬뢰브에서 청어를 잡아 팔거나 달걀을 팔아서 살아가는 그가 또다시 살인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에 베크와 콜베리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뱅크손은 시종일관 자신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베크와 콜베리는 차츰 뱅크손의 진술을 믿게 되고 새로운 단서들로 시그브리트의 과거를 조사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윗선에서는 뱅크손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뱅크손은 체포된다.

 

그 와중에 가까운 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범인은 즉사하고 경찰들도 부상을 입는다.

두 명은 위중하고 한 명은 사망한다. 그 경찰의 사망 원인은 총상이 아니고 벌에 쏘인 것이지만 윗선에서는 총격전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현장을 모르는 윗선들은 그저 언론에 좋게 보이기 위해 애쓰고, 현장에서 신중을 기해 사건을 수사하는 베크와 콜베리는 그런 조직에 환멸을 느낀다.

 

<경찰 살해자>는 비대해진 경찰 조직과 경찰로서의 자질이 없는 경찰에 대한 환멸, 이미 죗값을 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편견을 달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모습, 복지국가의 최전방에 선 스웨덴의 실체를 다양한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1973년이 배경인 이 작품은 스웨덴 사회의 비리와 문제점을 말하기 위해 쓰인 마르틴 베크 시리즈답게 정치에 이용되는 경찰 조직과 현장을 모르는 간부들의 정치, 경찰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일선에서 시민들과 대면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잘 버무려놨다. 게다가 사건이 윗선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질되고 조작되는지 잘 보여준다.

 

범인 하나 잡기 위해 헬리콥터를 동원하고, 완전무장한 기동대를 출동시키고, 경찰견까지 대대적으로 출동시키지만 정작 범인 근처에도 못 가고 끝난 출동 장면은 스웨덴 국민들의 세금이 줄줄 새어나가는 장면이다.

그들을 잡은데 필요한 건 노련한 형사 두 명이었다.

읽으면서 실소를 금하지 못한 장면이다.

결국 노련한 형사 두 명은 사기꾼과 함께 앞날이 창창하지만 자칫 경찰 살해자로 낙인찍힐 뻔했던 청년을 체포한다.

총 한 번 쏘지 않고도 경찰 살해자가 되어 전국 수배가 내려진 아이티를 벗지 못한 청년이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를 살려낸 것도 결국 성질은 불같아서 원성이 자자하지만 경험 많은 형사였다.

 

카메오처럼 출연한 사진 기억을 가진 멜란데르의 출연이 반가웠고, 콜베리의 결정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홀가분한 뒷모습이 보기 좋았고, 그러므로 인해 베크가 더 외로워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쓰인다.

그러나 베크는 지금이 가장 안정적인 모습이고, 뇌이드라는 쾌활한 경찰과 인연이 닿았으니 많이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엔 전작의 가해자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로재나>의 뱅크손과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보만은 죗값을 치르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하지만 감시의 눈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

 

50년 전이 배경이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 만나는 사건들과 배경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

범인을 대하는 경찰의 예의 바른 모습이 낯설지만 원래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것이 낯설었다는 사실이 우리가 얼마나 강압적인 경찰의 모습에 익숙해졌는지를 알게 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현란한 수사 솜씨를 발휘하는 현재의 경찰 소설과는 결이 다르다.

그야말로 독자들은 마르틴 베크와 함께 범인을 추적하게 된다.

주어진 증거와 드러난 사실만으로 독자들은 베크처럼 생각하면서 범인을 찾는 재미가 있다.

교묘한 트릭 없이도, 현란한 액션 없이도, 특별한 범인이 없어도 이 시리즈는 자꾸 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건 베크라는 형사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사실을 마주하는 방법에 있는 거 같다.

 

이 시리즈는 독자를 피로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해서 우리가 가진 문제점을 마주하게 한다.

그런 진지함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매력이다.

 

이제 하나의 이야기만 남겨 놓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

그 이야기엔 어떤 생각거리가 담겼을지, 어떻게 마지막을 장식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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