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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ㅣ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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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의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살아 있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루이즈
10대부터 쥘씨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학교 교사가 된 지금도 주말에는 그곳에서 일한다. 아무도 없는 루이즈에게 쥘씨는 보스이자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탄생 이전부터 쥘씨는 그녀와 그녀의 엄마 인생에 존재했으니까.
주말마다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있었다.
의사였던 그가 어느 날 루이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벗은 모습을 보고 싶소. 딱 한 번만 그냥 보기만 하고 다른 것은 안 해요."
루이즈가 그녀의 벗은 몸을 보여준 날 의사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버린다.
의사는 루이즈에게서 뭘 봤던 걸까?
가브리엘과 라울
그들은 군대에서 만났다.
라울은 수완이 좋은 남자였고 가브리엘은 정직한 남자였다.
라울은 패거리와 함께 가브리엘을 자신이 하는 짓에 동참시켰고,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가브리엘은 그에게서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큰 세계로 라울을 이동시켰고, 그는 빠르게 그 세계를 점령해갔다.
그러다 전쟁이 터지고 그들은 낙오병이자 탈영병이 된다.
가브리엘이 이해할 수 없는 건 라울이 위급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프랑스군을 위해 남았다는 사실이다.
다리를 폭파하는 그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그는 애국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도망치지 않았고, 독일군의 탱크가 밀려오는 순간에 두 사람은 다리를 폭파시킨다.
가브리엘은 라울과 어쩔 수 없이 함께 다니게 되고 라울의 생존력은 가브리엘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페르낭
소각로를 지키는 기동 헌병대원은 아내를 시골로 피난시키고 자신은 남는다.
알 수 없는 서류들이 소각로에서 매일같이 불타고 있었고, 그곳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자신이 소각하고 있는 것이 지폐라는 걸 알게 된다.
페르낭은 그 자루 뭉치 중 하나를 훔친다.
데지레
변호사, 조종사, 의사, 통역의 달인.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전쟁 틈바구니에서 그는 정보부에 들어가지만 그를 끈질기게 의심하는 드 바랑봉이 그를 뒷조사하고 있다. 과연 드 바랑봉은 데지레의 진짜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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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함 속에 담긴 경쾌함이 매력인 작품
전쟁이 배경이고, 감춰뒀던 비밀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혼란한 현실과 갑자기 밝혀진 비밀 사이에서 떠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아무 연관이 없을 거 같은 사람들을 나열하고 그들을 전쟁이라는 배경과 비밀이라는 사실 앞에 내던진다.
인물들은 계속 자신들을 둘러싼 운명이나, 필연을 따라잡아야 한다.
이 각각의 인물들이 어떻게 이어져있는지를 간파하는 순간 두꺼운 책장 사이를 부지런히 달린 기쁨이 번져올 것이다.
과거의 비밀을 찾아가는 루이즈의 모습
어떠한 상황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뭉쳐 다니는 가브리엘과 라울
정직한 FM처럼 보이던 페르낭의 일탈
가슴에 총을 맞은 신부님을 발견하고 그와 옷을 바꿔 입은 데지레는 물 만난 고기가 되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전쟁통에서 예측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르메트르는 전쟁 속에서 달라져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했다.
서로 어떤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연관되는 과정으로 필연을 만들어냈다.
어떤 상황들을 가슴을 조여오고, 어떤 상황들은 처참했으며, 어떤 상황들은 답답했고, 어떤 상황들은 그 상황 자체로 웃음이 났다.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이는 도망치고, 어떤 이는 자기 자리를 지켜내려 하고, 어떤 이는 남을 도우며, 어떤 이는 자기 것을 뺏기지 않으려 한다. 어떤 이는 사람들을 홀려 등쳐먹고, 어떤 이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 하고, 어떤 이는 기회를 엿본다.
전쟁통에서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인연과, 평안과, 해답이 찾아온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맘에 들지만 그중에 데지레에게 가장 애정이 간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가장 걸맞은 사람이 되었기에...
"주님께서," 신부가 말했다. "두 분이 같은 길을 걸어오게 하셨습니다."
르메트르는 이야기의 모든 이들이 같은 길을 걸어 독자에게 닿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