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뭐 하는 거예요, 장리노?
야스미나 레자 지음, 김남주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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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시신을 가지고 다섯 개 층을 내려왔다. 겁에 질리지도 않고. 정말이지 대담하지 않은가. 나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의 화자는 장리노의 아래층에 사는 여자다.

그와 그녀는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다.

아래층 여자 엘리자베스는 장리노가 경마장에서 가장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리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폐소공포증이 있어서. 그는 여읜 몸매에 크지 않은 키에 곰보 자국이 있는 얼굴로 대머리였다.

그리고 굵은 테의 안경을 썼다.

장리노는 리디와 결혼했고 아직 신혼 같은 그들에게 리디의 다섯 살짜리 손자가 맡겨진다.

장리노는 그 아이와 친해지려고 여러모로 노력하지만 아이는 아이만의 영악함으로 그를 다룰 뿐이었다.(이건 전적으로 리디의 생각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어느 봄 집에서 파티를 연다.

아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가볍고, 즐겁게 한때를 보낼 계획이었다.

장리노와 리디도 초대했다. 엘리자베스와 친분 있는 사람들과 장리노 부부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우리는 이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부부 싸움은 언제나 지극히 사소한 일로, 그리고 찰나의 기분으로 일어난다.

 

"내가 그 여자의 목을 졸랐소."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동물 복지를 운운하는 마누라를 흉본다.

그는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뿐이었다.

오락거리이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것.

 

여자는 그 모든 것들에 지친다.

사람들 앞에서 바보같이 자기 마누라를 웃음거리 만드는 남자.

어린애 같은 면이 있는 순수한 남자.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농담으로 자신을 깎아먹는 남자.

 

동물의 복지를 옹호하는 여자는 자기집 고양이에게 발길질을 한다.

남편에 대한 작은 분풀이였다.

남자는 그 모습에 울컥 화가 치민다.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에게 발길질을 하는 여자가 식탁에 오른 닭의 복지를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장리노에게서 언제나 좋았던 점은 그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자신 안에 풍경을 갖고 있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웃고 떠들던 사람이 살해됐고, 살인자가 되었다.

단 몇 마디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들의 면면을 이해하는 건 화자인 엘리자베스뿐.

그러나 그녀도 사건과 연루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방어한다.

장리노를 이해하지만 장리노와 함께 수갑을 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꾸 곱씹게 되는 이야기였다.

무심코 마주치는 문장들에서 삶의 면면을 보게 되어서.

몇 시간 전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들에게 생긴 문제에 대해서 나라면 어느 만큼 관여를 하고, 어느 만큼 그 문제에서 멀어지려 노력하게 될까?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처럼 읽혀서 놀랍다.

내가 그동안 범죄소설에 길들여져서 그런 걸까?라는 생각 뒤로 곳곳에서 마주치는 문장들이 어느 틈에 내 삶의 틈바구니를 노리고,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친 순간들을 포착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읽히면서도 아무렇지 않지 않은 이야기로 여겨진다.

 

느리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시 한번 읽고 싶다.

문장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사람을 울적하게 만드는 것은 무슨 엄청난 배신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상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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