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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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즐거우면 뭐든 다 해도 돼.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문제지, 자네가 떠안을 문제는 아니잖아.

 

Come Come Kan : 번번이 편집자에게 퇴짜만 맞는 신인 작가 사메코. 그녀에게 말을 거는 한 시대를 풍자한 작가의 동상. 사메코의 눈에만 보이는 간 씨는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메코에게 건네는 충고는 마치 조여졌던 끈이 풀어지는 거 같은 해방감을 준다. 간 씨의 능력을 이용할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메코의 모습도 멋지다!

 

 

눈앞의 남자가 용사처럼 용맹해 보인 것은 술에 취한 탓일까. 나는 못 한다. 모리에게는 생활에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가 지금은 물론 옛날에도 없었다.

 

둔치 호텔에서 만나요 : 로맨스 소설 한 권으로 꽤 오래 명성을 유지한 모리씨. 자신의 작품 배경이자 과거의 배경이었던 둔치 호텔에 오랜만에 방문했으나 그곳은 불륜의 성지에서 가족들의 아지트로 변모한 듯하다. 게다가 성가시게 계속 부딪히는 가족은 싱글파파에 두 아이. 옛 연인을 닮은 듯한 여자들에게 과거의 수작을 부리다 성희롱으로 호텔 지배인에게 핀잔까지 듣게 되는 모리. 그는 싱글파파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옛 명성을 되찾을 속편을 써보기로 한다. 과연 그게 될까?

비겁하게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도망쳐 온 모리씨의 뒤늦은 후회는 나머지 그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 것인가!

 

"친구와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네."

 

 

용사 다케루와 마법 나라의 공주 : 여성 전용칸이 또 다른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다케루는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해서 여성 전용칸에 올라탄다. 그를 몰아내려는 여자들과 한판 뜨려는 순간 자신이 좋아하던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공주를 구하는 용사 다케루. 그러나 다케루가 알고 있는 얘기의 버전은 다르게 흘러가고 다케루는 '협력' 만이 용사의 자격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이 이렇게 다림질이 잘된 셔츠를 입고 젊은 여자와 고급 초밥을 먹는 사이에, 그 등 뒤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쫓기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기 띠와 불륜 초밥 : 고급 초밥집. 불륜들의 아지트였던 그곳에 아기 띠를 두르고 난입한 아기 엄마. 육아를 하느라 2년 가까이 이런 곳에 못 와봤다는 그 엄마를 남자들과 주방장까지 못마땅해 하지만 당당하게 이것저것 메뉴에 없는 것도 주문하는 솜씨를 보니 꽤 미식가인듯하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남자들과 마주 앉아 있던 여자들의 마음엔 그 아기 엄마를 응원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 앞에 있는 이 남자들이 이러고 있는 동안 그의 아내들은 저 엄마와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을 참고 있겠지...

 

모르는 게 있으면 알아보면 되고 물어보면 된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서 있으면 시아버지라도 이용해라 : 이혼을 앞두고 아기와 함께 고향에 내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는데 시아버지가 따라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시아버지가 육아를 하고, 집안일을 도와주네? 알고 보니 바닥부터 시작해서 카페 체인점 사장이 된 시아버지는 모든 일에 진심인 사람! 이게 무슨 조합?? 읽으면서도 이게 가능해?를 외쳤던 이야기~ 이참에 같이 선술집도 운영해 볼까? 일본이라서 가능한 이야기??

 

 




왜 주위 여자들이 끊임없이 예뻐지려고 하는지 그제야 알았다. 다들 그저 악의에 노출되지 않고 안심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을 뿐인 것이다.

 

 

키 작은 아저씨 : 소녀소설 속 소녀들을 벤치마킹해서 자신의 삶을 궤도에 올려놓은 주인공 이야기? 또는 키는 작지만 자신이 기획한 동화 속 소녀들의 후원자가 되고 싶은 키 작은 아저씨 이야기? 아니면 둘 다?

어떤 인간이든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이 배분되는 사회가 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아파트 1층은 카페 : 온전히 여자들만 사는 아파트. 1층 카페에는 수시로 남자들이 들이닥쳐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다. 여자들끼리 똘똘 뭉쳐서 무언가를 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그 터전을 마련해 주는 사람은 남자. 이 아이러니 한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단지 거리감만 유지하면 되는 걸까?

 

 

유즈키 아사코의 단편 7편이 담긴 이 책에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떤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 그늘 아래서 안심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아우르는 것은 '협력' 과 '거리감'이다.

여성은 혐오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말하는 유즈키 아사코의 이야기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어쩜 나 자신도 나만의 편견과 관습에 묶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에는 여러모로 주눅 든 여자들이 나온다. 남자들은 별 볼일 없음에도 여자들을 비하하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런 것들을 웃으면서 받아치는 모습들조차 애처로워 보인다. 유즈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일본 사회가 우리 사회 보다 더 여성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재치 있는 이야기 사이에도 그 근본을 벗어나고 싶지만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숙명 같은 것이 느껴진다. 유즈키 아사코의 다음 소설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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