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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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우유에 자신의 피를 섞어 딸기 우유처럼 마시는 소녀들

13살. 사춘기 즈음.

아무도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의 세계에서만은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한 소녀들.

옥상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던 키라는 그 답을 알 수 없었고, 홀로 남겨진 에바는 살아가면서 그 답을 떠올려야 했다. <우유, 피, 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생명에 대한 상실감을 부여안고 살아야 하는 여자.

남자도 슬픔을 가슴에 묻고 가지만 그는 결코 그 느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유산은 환상통과 같다.

사지가 떨어져 나간 후에도 계속 그곳에 있다고 느끼는 환상통... <향연>

 

목사의 넌즈시 시도하는 행위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응징의 눈빛을 쏘아 보냈던 제이.

치졸한 목사의 복수는 부모와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제이를 옭아매고, 제이의 험담을 듣고 싸운 동생을 보며 제이는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분노에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자기로 인해 동생이 받은 상처는 응징해버리는 제이의 행동이 통쾌하다. 제이가 꽉! 쥐어버린 그것. 분노의 손놀림은 그 어떤 폭력보다 강한 것. 성희롱에 맞서는 제이의 당당한 분노가 아름답다. <혀들>

 

암이 재발한 글로리아는 화학 치료를 거부하고, 중년의 위기에 아내의 암재발까지 겹친 프레드는 방황한다. 고통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글로리아에게 돈은 걱정 말라며 계속 치료를 받자고 종용하는 프레드의 한쪽 마음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고통스러울 걸 알면서도 끝까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는 남겨질 사람들의 고집. 내 목숨인데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글로리아는 담배를 피워대며 집을 떠난다. 아내라는 직함을 얻게 되면 의견 또는 결정권 같은 건 사라지는 거지... <천국을 잃다>

 

엄마가 바람피웠다는 사실 때문에 엄마를 벌하고 있는 마고. 사실 마고는 엄마가 바람 같은 바람도 피워보지 못하고 소문에 질식해버린 점이 못마땅하다. 반항심 때문일까? 마고와 선생의 불륜을 짐작한 엄마는 그 선생의 집으로 쳐들어 가는데... 자신의 일에는 무능했던 프랭키는 딸에게 일어난 일만큼은 확실하게 해결할 용기가 있다. <적들의 심장>

 

바다에 빠져서 죽음을 마주한 순간 살아나려고 버둥거렸던 소녀는 작고, 힘없는 트위트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 상흔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아 사는 내내 문득문득 그녀를 찾아온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이 부끄러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사과하지 못한 그날의 진심... <배의 바깥에서>

 

스노우는 마법을 부릴 줄 알았던 걸까?

나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깨닫는 순간이 모든 사람들에게 오는 건 아니지... <스노우>

 

임신은 축복이라고 모두 알고 있지만 그건 그저 관습일 뿐. 정작 아이를 품고, 낳고, 길러야 하는 모든 일을 떠맡게 되는 여자에게 그 일은 마냥 축복이고 행복이고 기쁨일 수 없다. 그러나 그 외의 감정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의 시선. 빌리의 선택은? 블랙홀 속의 또 다른 빌리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필요한 몸들>

 

아버지의 흔적은 생각과 감정과 기억 곳곳에 남았고,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던 주변인들은 견디지 못할 슬픔을 지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그녀 자신은 스스로 피해자라는 생각보다는 사랑받았던 딸이라고 생각하고 모두가 그렇게 믿어주길 바란다.

그 아버지란 인간. 정말 징하다. 꼭 유언을 그따위로 해야 했니?

사막에 던져버려!!! <물보다 진한> 은 개뿔!

 

어린 게 연하고, 부드럽고, 맛있긴 하지...

인간 위의 포식자는 누구? <색다른 것들>

 

엄마의 부재. 보름달 밤의 모임. 뼈 모으는 할머니..

언젠간 뼈로 돌아간 모든 이들이 다른 세대들 앞에서 뼈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대단한 발견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뼈들의 연감>

 

11편의 이야기들 속 여성들은 모두 우리 안에 담겨있는 우리 자신이다.

11편의 이야기 중 절반은 모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여자로서의 부당함, 성희롱, 성폭력, 임신, 유산, 편견, 무지, 갈등, 변화 등등

나와 또 다른 나들이 겪는 일들을 독특한 울림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평범한 감정들이 아닌 유니크한 감정들로 나열된 이야기들의 잔향이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같은 감정을 낯설게 표현하면 다르게 느껴지고, 다른 걸 보게 된다.

<우유, 피, 열>이 내게 그런 이야기였다.

흔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흔하지 않게 쓰였기에 또 다른 감정들이 세련되게 몰려온다.

 

제시의 반격과 키라의 호기심 충족이 뇌리에 새겨진 <우유, 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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