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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마지막 한숨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2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평점 :

인도는 불확실성의 나라다. 기만이고 환상이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읽다 중도 포기한 이후로 그의 작품을 완독한 건 <무어의 마지막 한숨>이 첫 번째다.
역시나 예상처럼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온갖 은유와 수다스러움이 바스쿠 미란다의 기법처럼 덧칠한 그림들 같다.
부와 명성을 하루아침에 거머쥔 다 가마 가문.
그러나 그들 집안의 남자들은 별 쓸모가 없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가문을 이끌었던 이피파니아는 두 아들이 감옥에 간 사이 둘째 며느리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둘째 며느리는 아우로라를 낳는다.
이 이야기의 화자 무어의 어머니이자 탁월한 화가였던 아우로라.
열다섯에 아버지 나이의 유대인 아브라함 조고이비를 유혹해 남편으로 삼았다.
그들 사이엔 3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아름다움으로 이름을 떨친 이나
수녀가 된 미니
변호사가 된 마이나
그리고 넉 달 만에 태어나 보통의 인강보다 2배속으로 살게 되는 무어가 있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꾸밈없는 진실, 글자 그대로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나, 모라이시 조고이비, 일명 무어는 - 나의 죄 때문에, 내가 지은 수많은 죄 때문에, 나의 잘못 때문에, 내가 저지른 중대한 잘못 때문에- 2배속으로 사는 사람이다.
가끔은 두 분이 내 조막손과 조로증을 당신들의 죗값으로 여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 그들에게 나는 깨져버린 사랑에서 태어난 기형아, 온전치 못한 결혼생활이 탄생시킨 반쪽짜리 인생이 아니었을까.
한 집안의 흥망성쇠는 인도의 역사와 마주한다.
아우로라의 그림 속에는 다 가마 & 조고이비 집안의 역사가 인도의 역사 위에 흐른다.
무어 연작을 그리며 아우로라는 젊음을 불태웠다.
아들의 시각으로 묘사되는 아우로라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보다 자기 자신의 자아대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자식들과 남편 아브라함마저 아우로라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조고이비 집안사람들은 모두 각자도생이었다.
아내 대신 가문을 책임지며 막대한 부를 일군 아브라함.
아내 대신 수많은 여자들을 품었던 아브라함은 겉으로는 막대한 부를 쌓고, 안으로는 끝없는 지하세계의 왕이 되었다.
무어는 성인의 탈을 쓴 어린아이였지만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홀로 잡다한 지식을 습득했다.
어른의 몸이지만 아이에 불과했던 무어는 일찍 어른들의 세상을 맛보았고, 진실한 사랑인 줄 알았던 우마는 거짓말 투성이었다.
인도의 현대사를 관통한 조고이비 가족의 흥망성쇠.
막대한 부를 일군 조고이비 가문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무어는 가까스로 탈출한다.
어머니의 복수를 외쳤지만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어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우로라 자체가 인도였다면 아우로라의 죽음은 그 누구의 배신도 아니었다.
살만 루슈디의 문체는 화려하기 그지없고
그의 표현들은 방대하기 그지없고
그의 생각들은 걷잡을 수 없이 달려나가기 그지없다.
연신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읽었다.
소란스럽고, 그러면서도 강렬한 향기가 코끝에 넘치는 이야기 <무어의 마지막 한숨>
인도 당대 최고의 가문이었지만 그 어떤 비천한 신분들 보다 더 비천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
각 종교의 혼혈아들이 펼치는 기괴한 가족사는 분열되고, 정신없고, 아직도 모아지지 않은 인도 그 자체의 모습처럼 보였다.
살만 루슈디의 정체성을 찾아가 가는 이야기
무어는 루슈디 자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했고, 그저 경악스러운 진실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