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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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올라타서, 추는 시간을 앞질러, 시간을 이끌면서 달렸다. 말의 무게와 사람의 무게가 말의 힘에 실려서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바뀌었다. 말을 타고 달릴 때, 새로운 시간의 초원이 추의 들숨에 빨려서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초원은 다가왔고 다가온 만큼 멀어져서, 초원은 흘러갔다.

 

 

굵고 힘 있는 문장들이 뇌리에 박힌다는 게 이런 느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 줄거리를 찾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문장을 통해 느껴지는 그 생생함을 그저 내 안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초(草), 단(旦) 두 나라의 싸움이 배경처럼 흐르고

피비린내와 말똥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사람의 이야기인 듯

전쟁의 이야기인 듯

인간의 어리석음인 듯

인간의 생로병사인 듯

여겨지지만 말(馬)을 노래한다.

 

힘 있는 문장들을 읽고 있자면 내 안에서 뭔가가 출렁거린다.

마치 가 본 적 없는 시대에서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전쟁은 생로병사와 같다. 날이 저물면 밤이 오듯이 전쟁이 끝났다.

 

 

초와 단의 전쟁은 어느 시대에든 있었던 일 같고

토하와 야백의 운명은 인간들에 의해 규정된 삶 같았다.

 

감히 인간이

토하와 야백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그들을 타고 피바다를 달렸다.

감히...

 

날이 저물어서 야백의 이마에 빛이 살아났다. 혈관이 터지자 야백은 더욱 빨리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면 초원이 끝나고 사막이 끝나는 어디쯤에서 재갈이 벗겨질 것 같았다. 이마의 빛 속에서 핏방울이 흩어지는 듯했다.

 

 

비혈마 야백

신월마 토하

그 사이에 있었지만 유실된 유생

인간이 멋대로 낙태시킨 야백과 토하의 유생..

 

기록되지 않은 시대

그 시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야백과 토하를 따라 초원을 달린다.

그들의 재갈이 내 입에도 달려진 거 같다.

인간에 의해 재갈이 물리고, 스스로 그 재갈을 빼어냈던 그들...

인간에 의해 강제 사육 당하다 인간에 의해 버려진 그들...

 

김훈의 문장들은 여운이 오래간다.

문장들에 맞은 기분은 멍하니 좋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세상에 잠시 갔다 온 느낌으로 멍하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그림을 표지로 해서 개정판으로 출간된 <말 너머로 달리는 말>

글의 느낌이 표지에 스며있다.

 

간결하고

힘 있는

굵은 문장들에서 헤엄치다

가벼운 세상으로 돌아왔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인간이 인간을 위해 쓰임새를 바꾼 수많은 종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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