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스무 살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7
최지연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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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온도가 너무 낮은 무시와 온도가 너무 높은 간섭이 아닌 적당히 따스한 관심을 받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스무 살 은호에겐 18살 차이 나는 엄마가 있다.

대학에 입학한 은호는 집을 벗어나 서울에서 자취를 한다.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알바를 하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던 은호에게 어느 날 엄마가 온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가 은호의 자취방으로 옮겨온다.

혼자 바듯이 살아가던 자취방에 엄마와 함께 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이 사라진 은호에겐 피해왔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재생된다.

 





엄마의 간섭과 잔소리에 부대끼다 못해 대학 상담실을 찾은 은호.

돈 안 들이고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쏟아내는 은호.

그런 은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상담사의 조언조차도 은호에게는 버거운 '약'이었다.

 

 

그때의 엄마가 지금의 나처럼 이십 대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 엄마, 참 대단하고 안쓰럽다는 감상. 엄마는 정말이지 내 마음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툭하면 집을 나가고, 돈도 벌어오지 않으면서 때가 되면 스스로 기어들어와 그동안의 미안함을 강짜 부리기로 대신하는 아빠.

그런 아빠와 징글징글하게 싸우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은호의 연애에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재빨리 불타오르고 차갑게 식어버리는 은호의 연애에 준우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다가왔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준우에게 밑바닥 탈탈 털린 은호는 준우마저 밀어내려 한다.

 

은호 나이에 엄마는 아이를 키웠다.

무능한 남편 대신 악착같이 일을 하며 아이 둘을 키워냈다.

꽃다운 엄마 나이를 아이를 키우고, 먹고살기 위해 불살랐다.

 

은호는 엄마가 지금이라도 엄마 인생을 살길 바랐다.

 

 

"나는 남자 손끝만 닿아도 소름이 끼쳐. 알아?"

 

 

엄마의 이 말에 담긴 의미가 점점이 다가온다.

엄마 아빠의 만남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로 인해 나는 은호 엄마 희정 씨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했다...

 

내 마음에는 빚이 쌓였다. 태어나면서부터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 엄마와 내 관계를 채권 채무 관계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진 빚이 출산뿐이라면 다행일 텐데, 시간이 갈수록 이자가 복리로 쌓이는 게 문제였다.

 

 

단숨에 읽히는 호흡을 가졌다.

<이 와중에 스무 살>은.

은호를 응원하던 마음은 어느덧 희정 씨를 응원하게 된다.

고달픈 인생이지만 열심히 자신을 지키며 살아냈던 희정 씨.

그래서 은호 역시 자기 자신을 그렇게 지켜내면서도 한편으론 아빠의 기질을 저버리지 못해 헤어짐과 만남을 계속했었나 보다.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태어난 이상 부모에게 진 빚이 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태어났다는 이유로, 날 낳아줬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무한한 빚을 지고 시작하는 인생.

어느 한쪽이 무책임했다면 다른 한쪽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을 한계점으로 몰아갔다.

 

엄마와 딸 사이.

그 애정과 애증의 사이.

나는 은호와 희정 씨의 이야기에서 나와 내 엄마를 본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은호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무 날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은 더 이상 배울 게 없고,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야 하는지 알 길이 없고,

탈출구가 없을 거 같은 삶.

답이 안 보이는 가족관계.

관계 개선이 안되는 엄마와 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엄마가 불쌍하지만 자업자득인 거 같고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엄마를 닮아가는 삶.

 

은호는 강했다.

잠시의 방황을 뒤로하고 자신을 찾아가니까.

그것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고, 대꾸하기 싫은 말이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거부하고, 도망치고, 외면했던 잠시를 지나 받아들이고, 다시 제자리에서 마주 선 은호의 스무 날.

 

성장 소설에서 내게 필요한 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내 마음이 허를 찔린 거 같았다.

<이 와중에 스무 살>을 읽으며 나는 은호와 함께 투덜거리고, 짜증 내고, 열받아 하고, 외로워하며 같이 성장했다.

 

내 어린 마음이 자라지 못하고 저 멀리 숨어 있다가 은호와 함께 불쑥 커버린 느낌이다.

부모의 한 마디가 미치는 영향력은 아이가 자라는 내내 함께 자란다.

그 말에 절여져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스스로를 저버리고 사는 삶도 있고

은호처럼 그 말을 되뇌면서도 발목 잡히지 않으려 애쓰는 삶도 있다.

어떤 삶을 선택하냐는 나의 의지다.

누군가가 내 삶을 만들어주지는 않으니까.

 

자라지 못한 내 마음을 자라게 해주고

견고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하게 하는 <이 와중에 스무 살>

은호의 이 와중에 마흔, 이 와중에 칠십을 읽었으면 좋겠다.

중간중간 자라지 못한 마음에 영양분을 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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