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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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악취 - 그게 나를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세라 망구소가 25년간 써온 일기 중에서 뽑아낸 글들을 읽고 있자니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보인다.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치열했던 사람.

글쓰기에 대한 강박을 느낄 정도로 쓰고 또 썼던 사람.

일기에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은 거 같은 글이 도처에서 반짝인다.

 

가감 없이 솔직한 글들이 날카롭게 빛난다.

나는 일기를 쓰면서도 나다운 적이 없었는데..

항상 누가 볼까 봐 내 마음인데도 다 펼쳐 보이지 못했는데..

이 망각 일기엔 모든 게 다 들어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솔직해지고 싶어진다.

 

 

내가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매 순간이 너무나 감당하기 벅차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다.

 

 

자신을, 자신의 감정을 덜어내고 덜어낸 흔적들을 따라 내 마음도 덜어내 본다.

솔직하지 못했던 나 자신과 너무 솔직해서 가끔 거부감이 드는 글들을 비교해 본다.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조차도 다 까발리지 못하는 나는 무엇을 감추고 살고 있는 걸까?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머리를 쥐어뜯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이유는.

 

망구소는 가끔 자기 일기를 읽는다.

그리고 고쳐 쓴다.

노트북에 폴더 이름을 수학과 관련된 이름으로 짓는다.

누군가 들여다볼 일 없을 거 같은 폴더를 가끔 들여다보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솔직하다.

그리고 꽤 치열하다.

자꾸 치열하다는 단어를 쓰게 하는 세라 망구소.

 

결혼은 고정적인 경험이 아니다. 결혼은 지속적인 경험이다. 결혼은 형태를 바꾸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제자리에 있다. 얼어붙은 수면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처럼. 이제 나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어가기로 한 지속성에 균열이 생긴 느낌이 들면 이렇게 생각한다. 강으로 돌아가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다 문득 내가 가진 오랜 기억의 무게뿐 아니라 부모님이 가진 오랜 기억의 무게까지 느껴질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잊히는 것, 그토록 광대하고 지속적인 공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보다 더 죽음 같다.

 

임신 기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정보라는 것이 내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가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일기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몸, 내 삶은 내 아이의 삶을 이루는 풍경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다.

나는 하나의 세상이다.

 

결혼, 죽음, 육아

우리가 모두 겪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쓰인 글들로 대하게 되니 그것조차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 아이를 낳은 이후에 쓰인 일기는 절박하게 다가온다.

자꾸 잊어 가는 자신의 본 모습을 되새기기 위해 안간힘을 쏟지만 그것마저도 금방 잊혀버릴 걸 아는 사람의 시도가 맹렬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쓰는 걸 멈추지 않는 그 기개가 좋다.

그러기에 그 누구와도 다른 글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겠지..

 

일기를 통해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차곡차곡 정리해, 그 시간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면서 나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게 되었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아까워하면서도 그 시간을 기억하지 않는 걸 택했다.

세라 망구소는 모든 걸 기록하지만 그것마저도 잊어버릴까 걱정한다.

그러다 서서히 놓는 법을 깨닫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부모가 된다는 게

어른이 된다는 게

그런 거 같다.

 

잊는 법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나는 망각이 내가 삶에 지속적으로 관여한 대가임을, 시간에 무심한 어떤 힘의 영향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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