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정과 위작 - 박수근·이중섭·김환기 작품의 위작 사례로 본 감정의 세계
송향선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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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술품 감정의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다. 안목감정이 가장 중요하지만 더불어 재료를 분석하는 과학 감정과 논리적인 감정 체계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른바 감정학의 토대가 점점 다져지고 있다.

 

 

그림을 감정해서 위작을 판별하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 책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자료들과 사례들을 모아 전문가와 대중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아직은 그림 감정 분야가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은 분야가 아니기에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미술계의 발전과 함께 그림 감정을 해온 저자가 자신이 가진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사장 시키기 아까워서 책으로 엮었다는 사실 외에도 이 분야에 전문 지식은 없지만 그림이 투자의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에서 진품과 위작을 가리는 일은 그만큼 중요해졌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은 있었지만 한국 미술도 잘 모르고, 봐도 잘 모르는 그림들의 가치와 진품의 여부는 늘 궁금증의 대상이다.

딱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 가장 잘 적용되는 분야이기도 한 위작 감정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작품을 예로 든 책에는 각 작가의 챕터마다 이름을 붙였다.

 

[위작에는 향기가 없다]

 

박수근은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1950년대 이후 도시 변두리의 생활을 그렸다.

한때 생활고로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렸다. 그때 박완서 선생님과 알게 되어 후에 나목이라는 작품의 옥희도의 모델이 된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과 위작으로 의심받아 감정 대상작이 된 그림을 비교해 보면 이 챕터의 소제목 [위작에는 향기가 없다] 가 이해가 된다.

어떤 사람은 위작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반듯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정갈함을 밀어 넣은 그림은 그저 흉내 내기와 함께 그럴듯함을 새겨 넣었다.

원작의 느낌은 거친 듯 투박한 듯 세심하다.

삶은 보여주기식인 위작보다는 거칠고 투박함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진작에 더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진작에는 고된 맷돌질이 느껴지는 데 위작에서는 그저 맷돌질하는 흉내만 내는 느낌이 든다.

마치 사진 찍기 위해 취한 포즈처럼.

 

 

 

[비슷한 것은 가짜다]

 

위작은 위작의 대상이 되는 화가의 작품을 보고 베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중섭의 작품 위작도 그의 도록이나 카탈로그에 실린, 위작의 기준이 되는 작품을 보고 베낀 것이 많다. 그래서 감정할 작품이 도록에 있다고 참고는 할 수 있으나 무조건 진품이려니 하고 안심하거나 믿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함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예술과 사랑,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은 화가였다.

그의 그림의 근간은 끝없는 '가족 사랑'이다.

이중섭은 1950년 월남해서 1956년 작고하기까지 전쟁과 가족과의 생이별과 병고에 시달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위작이 가장 많은 화가이다.

 

 



이중섭의 작품에는 서명이 없는 작품도 많은데 [싸우는 소]에 서명이 없으니 작품의 진가를 흐리게 할까 봐 소장가가 직접 서명을 해 넣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그저 남들 눈에 내가 가진 것을 보이고 싶은 마음만 보여서 씁쓸했다.

이중섭의 그림은 위작이 많은데 그의 그림의 가치가 높은 탓도 있겠지만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 따라 하기 쉬워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작이 많은 게 아닐까? 그러나 똑같이 그린다고 해서 다 똑같은 선이 아니다. 그 선에 실린 이중섭의 힘은 아무도 따라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비슷하지만 가짜일 수밖에 없다.

 

[진작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

 

김환기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정확한 기록을 가진 화가이다.

초창기부터 죽은 이후에도 그의 작품은 출처가 분명하고, 그의 작품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의 위작들이 나도는데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위작들이 진작의 기품을 따라오지 못하는 거 같다.

특히 김환기 그림의 색채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못 보던 그림도 많이 봤고, 그와 비슷한 그림도 덩달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감정이 다각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감정가의 안목도 중요하겠지만 근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과 기록들의 보관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쟁통에, 산업화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잊으며 흘려보냈다.

이제 우리는 그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시작점에 서 있다.

많은 감정가들이 탄생해서 진정으로 삶을 그려냈던 화가들의 그림을 위작으로부터 보호해 줬으면 좋겠다.

그림을 그저 돈으로 보지 않고 수 세기를 이어 후손들에게 문화의 버팀목이 되어 줄 자료와 기록으로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림 보기 좋아하는 분들.

그림 감정에 관심 있는 분들.

진작과 위작이 어떻게 다른 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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