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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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덕에 차분해진 내 맥박은 아마 정상일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다. 그래서 글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써지는 건지 모른다.

 

헬레나 로스는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로맨스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나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결벽증에 강박증에 수많은 규칙들에 둘러싸인 여자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 작품을 앞두고 대필 작가를 찾는다.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단 한 사람의 대필 작가는 그녀와 수년 동안 서로 으르렁댔던 라이벌 작가다.

서로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신랄한 혹평을 서로에게 건네던 이 두 사람은 헬레나의 마지막 작품을 같이 집필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를 엄마로 둔 헬레나.

열세 살 때부터 글을 썼던 천재 작가 헬레나.

그런 그녀를 종양이 좀먹어 가고 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석 달.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려고 한다.

4년 전 그녀가 한 거짓말.

4년 전 있었던 그 끔찍한 일에 대한 거짓말.

그녀는 왜 그냥 모든 걸 묻어 둔 채로 조용한 죽음을 맞으려 하지 않는 걸까?

 

이번 글은 평범한 원고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나와 가장 닮은 여자의 이야기다. 내가 신었던 신발을 신고, 내가 밟았던 길을 걷고, 내가 했던 결정을 하고, 내가 지었던 죄를 짓는 여자.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헬레나라는 인물에 대해 느껴지는 감정은 이렇다.

짜증 나는 캐릭터다.

생각하는 게 어이없다.

매사가 이기적이다.

싸가지도 없고.

정신이 어떻게 된 거 같다.

 

그래서 그녀가 감추고 있는 과거의 어떤 비밀 같은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 잘못을 교묘하게 감추려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여자로 읽힌다.

그러다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영혼이 어른의 탈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내려 한다고 읽힌다.

그러다 글쓰기라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답게 자기 시간과 자기 공간을 어떡해서든 찾아내려 했다는 이해와 함께 그러나 아이를 방치한 건 용서가 안된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이 강박증 가득한 여자의 이야기는 때론 동정심과, 정떨어짐과, 분노와, 이해불가와 함께 그 모든 걸 다 품어주고 싶은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렇듯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만드는 헬레나의 마지막은 그래서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게 만든다.

로맨스도 아니요

감동적인 이야기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저 가슴 바닥 깊은 곳에 잠재된 슬픔을 건드린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여자.

엄마로서 어떻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 여자.

수많은 규칙들을 만들어냈지만 다른 사람들의 규칙도 지키려 노력했던 여자.

단지 글쓰기를 위해 자기 시간이 절실했던 여자.

남편과 아이를 사랑했던 여자였을 뿐이었다...

 

내가 더 많이 벌수록 그는 더 많이 썼다.

 

 

자기가 번 돈을 한 푼도 써본 적이 없는 여자.

아이를 남편과 엄마에게 빼앗길까 봐 사력을 다해 지키려던 여자.

남편의 비밀을 알고 나서 살길을 찾아냈던 여자.

그러나 그 모든 게 산산조각이 난 여자.

집에 가구가 하나도 없는 여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저택에서 글만 쓰는 여자.

 

헬레나 로스.

 

이 슬픈 여자를 알게 된 게 처음엔 짜증 났었다.

이 강박적인 여자를 알게 된 게 중간엔 조바심이 났다.

이 거짓말쟁이 여자를 알게 된 게 마지막엔 너무 슬펐다...

 

그녀의 영혼이 정말 편하게 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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