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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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법소녀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유우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의 환상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다.

고만 때면 항상 자신을 '다른 무엇'으로 상상하는 아이들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은연중에 일어나는 언어적, 물리적 폭력에 항거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걸 알고 나면 이 이야기를 편하게 읽을 수 없다.

나쓰키도 유우도 마법소녀이며 외계인이 되어야만 이 지구별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래야 참아낼 수 있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집에 쓰레기통이 하나 있으면 편리하다. 아마 나는 이 집의 쓰레기통인 듯싶다.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불쾌한 감정이 부풀어 오르면 나를 향해 던져버린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던 나쓰키는 사촌인 유우와 결혼을 한다.

유우만이 나쓰키를 이해하고 받아주었기에 두 사람의 결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두 아이에겐.

나쓰키는 학원 선생인 잘생긴 대학생에서 성적 희롱을 당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나쓰키의 잘못이고, 다 나쓰키의 착각이고, 다 나쓰키의 못된 짓이다.

그래서 나쓰키는 마법소녀로 거듭난다. 그녀의 마법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외침은 무시로 되돌아오고,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기에 마법소녀는 마법의 힘을 빌어 '마녀'를 퇴치한다.

이미 마녀에게 입을 잡아먹혔기에 아무런 맛도 못 느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쓰키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쓰키는 유우와 '관계'를 갖기로 한다. 마녀에게 더 잡아먹히기 전에 온전한 몸으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유우와 합체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지구별 성인들에게 그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을 뿐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내 자궁은 이 공장의 부품이며, 마찬가지로 부품인 누군가의 정소와 연결되어 아이를 제조할 것이다. 암컷과 수컷은 공장의 부품을 몸 안에 감춘 채 너 나 할 것 없이 둥지에서 꿈틀거린다.

 

 

두려운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을 보기 시작한 나쓰키를 지구별 성인들이 평가할 수 있을까?

평가하기 전에 먼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아이로서의 시선을 갖지 못한다는 건 분명 이상이 있다는 사실인데 정말은 그 사실을 파고들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그 모든 걸 그저 묻어 버리고 나쓰키와 유우를 강제로 떨어뜨려 놓은 것뿐이다.

그 이후로 나쓰키는 친족 간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우는 참석 가능했다.

악의에 찬 언니로부터 유우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쓰키는 어른이 되었다.

지구별의 부품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쓰키는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도모오미를 만나 결혼한다.

결혼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서로의 공장으로부터 독립한 나쓰키와 도모오미.

그들의 평화는 유지될까?

 

상식의 보호 아래 있을 때 인간은 타인을 심판하게 된다.

 

 

어른이 된 나쓰키와 유우.

나쓰키는 마법을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자신이 포하피핀포보피아 별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우주선이 없어서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 별.

유우는 어린 시절을 기억은 하지만 이젠 지구별 성인이 되어 버렸다.

상식적이로 합리적인 지구별 성인이 된 유우는 그래도 나쓰키와 도모오미를 이해하는 하나뿐인 지구별 성인이다.

 

나쓰키도, 유우도, 도모오미도 모두 처절하게 안쓰럽다가도 지독하게 외면하고 싶어진다.

세 사람의 광기는 누구의 잘못일까?

가정과 사회가 쌓아 올린 이 공상의 세계에서 철저하게 지구인이길 거부하는 이 세 사람의 고통은 누구의 잘못일까?

아무도 본질은 보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상식에 어긋나면 모두 외면받는 이 세상에서 세 포하피핀포보피아 외계인들의 모습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다.

그러나 그 절대 용서받지 못할 자들을 만들어 낸 사람들과 세상은 과연 용서될 수 있을까?

 

<편의점 인간>을 읽어 보지 못해서 무라타 사야카의 글은 <지구별 인간>이 처음이다.

무심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가다가 보통의 현실에서 가장 최악의 장면을 마주쳤다.

나 자신이 죄인이 된 기분이다...

 

지구별 공장에서 매일 생산되는 포하피핀포보피아 외계인들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있을 거 같다.

이 공장을 멈추려면.

아니 이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여성에 대해서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

남을 자기 잣대로만 재단하는 세상에 대해서

아이들의 두려움을 알아채지 못하는 어른으로서

처참하고 두려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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