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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평점 :
반전이 있다는 걸 알고 읽었음에도 어디에 그 반전이 숨어 있는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바쁘게 움직인다.
내가 생각했던 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는데 역자 후기까지 읽고서야 답을 알았다.
그러니 <흑백합>은 모든 페이지를 끝까지 다 읽어야 완성된 퍼즐을 알 수 있다.
서정적인 50년대의 이야기
미스터리 한 30년대의 이야기
스치듯 지나는 40년대 이야기
그 사이에 두 건의 살인이 담겼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살인사건을 추리하지 않는다.
50년대 두 소년과 한 소녀의 풋풋한 여름방학은 그들의 주변인인 어른들의 비밀들을 조금씩 전해준다.
서로가 서로를 발견해서 알아가는 사이사이에 양념처럼 들려주는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는 30년대와 40년대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흑백합>
꽃을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쟁 전에 도쿄에는 여학생 불량 서클이 몇 개 있었는데 흑백합파가 그중 하나라는 거야. 그 그룹 학생들이 다니던 미션스쿨 마크가 백합이어서 붙은 호칭이래
가오루 아빠의 첫사랑은 불량 서클의 리더였다.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아빠는 그녀를 버렸다.
뭐든 실증을 잘 내는 아빠였으니까.
가즈히코와 스스무의 아빠는 독일 출장길에서 한 여성을 만난다.
외국에서 만난 일본 여인은 독일어를 하나도 못하지만 주눅 드는 법 없이 당당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여인은 결국 홀로 일본으로 돌아간다.
한 여고생은 기차 차장을 좋아했다.
그저 풋사랑이라고 여겼던 차장의 생각과는 다르게 여고생의 마음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고생의 오빠는 그 두 사람의 사이를 방해했다.
가진 게 많은 집안에서는 지킬 것이 많은 법이지...
14살 중학생들의 풋풋한 우정이 싱그러운 롯코산의 여름처럼 설렘을 주었다면
독일 출장길에서 만난 여인은 미스터리함을 남겼고,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된 사람은 죽음으로써 비밀이 영원히 묻어지게 되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그날의 진실, 그리고 그들의 진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그 여자가 그 여자인가?
범인은 그 남자?
절필을 선언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작가의 마지막처럼 이 이야기도 홀연히 끝난다.
그러나 누군가의 정체를 알고 나면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서 놓친 단서를 찾게 된다.
내가 일본 사람이었다면 제목에서 뭔가를 유추해냈을 것이다.
그것을 몰랐기에 이 이야기의 묘미를 끝까지 즐길 수 있었다.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재출간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참 다감하게 읽어가다가 뇌리를 스치는 한 방이 있었다.
한 소년은 소원성취를 했고, 한 소년은 그 시절을 추억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윗대에서 있었던 비밀은 절대 모르고 살 것이다.
내가 우리 엄마, 아빠의 역사를 다 모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