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 - 코펜하겐 삼부작 제3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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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됐지만 나의 매일은 먼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내 위에 내려앉는다. 어느 하루는 다른 모든 날들과 닮아 있다.

 

 

비고 F와 결혼한 스무 살의 토베.

녹색으로 꾸며진 집에서의 생활은 안정적이면서도 불안정하다.

어머니 보다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 토베에겐 성생활이 없었고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맺을 결실을 기다리는 토베는 점점 결혼한 걸 후회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젊은 예술가 클럽'을 만들고 또래들과 교류하면서 토베의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토베의 남자 보는 눈은 어찌나 없는지...

이혼을 요구하는 피에트는 결코 토베를 책임지려하지 않고, 결국 토베를 떠나고 만다.

그가 토베에게 남긴 건 토베의 자유(?) 정도랄까. 이혼녀가 된 토베는 대학생인 에베를 만나고 아이를 갖게 된다.

그리고 첫 소설로 데뷔를 하고 이름있는 작가가 되어간다.

 

"왜 정상적인 보통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데."

 

 

토베의 글을 읽다 보면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가 자신을 너무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어쩜 에베의 저 말처럼 토베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보통 사람으로 생각했겠지만.

 

'나는 돈과 권력과 명성을 원해요.'

 

토베를 취재한 신문 기사의 제목이기도 한 저 말이 진짜 토베를 말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녀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에는 글에 집착했고, 글을 떠나서는 자신을 지탱할 수 없었다.

그리고 늘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다.

예술가의 호기심과 모험심은 그녀가 원하는 보통 사람이 되기에는 시대가 그녀를 보통으로 보이게 두지 않았다.

 





첫아이를 낳고 불감증에 걸렸던 토베, 에베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둘째 아이를 지우고 그녀의 인생은 카를이란 남자를 만나면서 중독으로 변질되어 간다.

카를로 인해 약물중독으로 산 5년의 세월.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글도 쓰지 못했던 시간들.

그대로 그녀가 멈춰버릴까 봐 조바심이 났다.

중독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를 구제할 수 없으니까.

 

빅토르와의 만남은 토베에게 행운이었다.

긴 악몽에서 그녀를 깨우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약에 대한 갈망은 토베를 쉽게 떠나지 않았다.

 

<의존> 속에 보이는 토베의 모습은 '안쓰러움'이다.

그녀의 부모가 조금 더 그녀를 품고 있었다면 그녀의 첫 결혼은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토베의 길은 조금 다른 결로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어떤 결정을 하던 토베는 보통스러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는 그녀의 글은 사실이면서도 소설 같다.

한 소녀의 성장기를 지켜본 기분이다.

서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과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가정을 찾게 된 토베의 성장기.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소설처럼 느껴지는 글이 코펜하겐 삼부작의 매력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읽어낸다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그래서 이 글을 차라리 소설로 생각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코펜하겐에서의 토베는 꾸준하게 자신을 갈고닦아 가는 시간이었다.

그건 토베의 의지로서 가능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서 그녀에게 온 유혹은 그녀의 시간을 앗아갔다.

모든 청춘들이 그렇게 시간을 빼앗기기 마련이지만 그녀의 시간은 유독 지독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진정 <의존>했던 것은 '글쓰기' 라고 생각된다.

그것을 잊지 않았기에 중독에서 빠져나오려 했을 것이다.

약물 보다 더 중독적인 글쓰기. 그것이 토베가 죽을 때까지 <의존>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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