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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이유 ㅣ 워프 시리즈 1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8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913/pimg_7368641353556405.jpg)
나의 자궁 안에는 구불구불하게 주름진 희뿌연 뇌가 들어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사고를 당한 남편의 몸을 복제할 때까지 그의 뇌를 내 자궁에 넣어서 보존해야 한다면?
그러기 위해 2년간 임신 상태로 있어야 한다면?
그렇게 복제된 남편은 정말 내 남편이 맞을까?
아이 대신 뇌를 임신(?)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면?
이 모든 행위를 필요로 하는 이것은 적절한 사랑일까?
나의 증세 대부분은 두골 내의 압력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지만, 뇌척수액을 검사해 본 결과 루엔케팔린이라는 물질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루엔케팔린은 신경 펩티드인 엔도르핀의 일종으로 마약성 진정 물질과 결합하는 수용체들과 동일하다.
악성 종양과 함께 나는 루엔케팔린을 얻었다.
행복감을 표시하는 주요 수단인 루엔케팔린.
하지만 악성 종양을 없애자 사라진 루엔케팔린으로 인해 나는 끔찍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행복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는 의뇌를 이식하기로 한다.
20~30대 남성 4000명분의 기록이 담긴 의뇌.
감정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뇌를 가진 '나'가 느끼는 행복은 진짜일까?
11편의 단편은 나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보거나 읽은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한층 심오하고 한층 과학적이다.
그래서 이해하는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뭔가 알 거 같은데 '감'이 잡히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렉 이건이 보여주는 세계는 그동안 SF 소설들을 통해서 알아온 세계와 조금 결이 다른 거 같다.
좀 더 과학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내게 과학적 지식이 좀 더 있었다면 완벽하게 이해했을 거 같은 이야기들이 앞에서 좀 아쉬웠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그렉 이건의 세계는 이제까지의 SF 소설들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테드 창이 철학적인 SF의 세계를 펼친다면 그렉 이건은 독특한 상상력이 실현 가능한 과학기술의 세계를 선사한다.
그렇기에 마주치는 단편적 이야기들 앞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내가 그렉 이건의 SF 세상에서 이런 일들을 겪는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과학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지식을 맘껏 펼쳐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이야기.
과학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자체를 알게 되어서 좋은 이야기.
<내가 행복한 이유>
독특한 이야기들을 읽는 것만으로 마치 미래를 다녀온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