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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
레이철 호킨스 지음, 천화영 옮김 / 모모 / 2022년 8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903/pimg_7368641353542883.jpg)
차 소리가 들린 뒤에야 차가 눈에 들어왔고, 그때까지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훗날, 나는 이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어쩌면 내가 앞으로 닥칠 일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궁금해하곤 했다.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나를 이 한 지점으로, 한 주택으로 이끈 것은 아닌지.
그에게로 이끈 것은 아닌지.
영원한 고전 <제인 에어>를 현대적 버전으로 각색했다는 <기척>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게 쫄깃했다.
고급 주택단지 '손필드'에서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던 제인에게 일어난 일.
이런 문장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할까?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인 앞에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급 주택 단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제인이 얽히게 될 것이다.
<기척>은 두 가지 장르가 맞물려서 독자들을 정신없게 하는 작품이다.
나는 앉아서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내 삶을 나눌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 여기서 틈이, 기회가, 약간의 거짓을 가미한 진실을 말할 호기가 있었다. 그렇게 하면 손톱 관리니 반지니 에두르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개 산책 알바 틈틈이 개 주인들의 보석을 훔치는 제인.
남부 어딘가에서 큰 사고를 치고 쫓기는 몸으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살면서 이전 위탁가정에서 알게 된 존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훔친 보석으로 집세를 내고 존의 집에서 탈출하기만을 벼르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손필드에서 운명적으로 '에디'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주인공 제인과 실종 상태로 남아있는 에디의 부인 '베'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쫄깃한 이야기는 로맨스와 미스터리 그리고 스릴러를 잘 섞어놨다.
그래서 읽는 동안 멈추기 쉽지 않았다.
신데렐라 스토리에 스릴러를 접붙이기해서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레이철 호킨스.
첫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글의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어디서 많이 읽은 거 같은 이야기인데 전혀 새롭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 남성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한 '제인'
자수성가하여 부의 세계를 이룩한 '베'
모든 걸 가지고 태어났지만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블랜치'
<기척>은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작가의 글 솜씨에 빛나는 반전을 입혀줌으로써 독자의 예상을 깨게 만든다.
그리고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숙제를 남겨둔다.
<제인 에어>의 현대적 재해석은
결코 주인공의 정석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제인이 못마땅하지만 왠지 측은해 보여서 이해해 보려 애쓰게 된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니까.
휘둘리지 않고, 교묘하게 상대를 움직일 줄 알지만 알고 보면 자기보다 월등히 교묘한 인간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제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독자들의 연민을 자극하는 <기척>.
욕망으로 가득한 여인들이 만들어 내는 진정한 스릴러 <기척>
제목만 보고는 별거 없겠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기척>의 <기척>을 제대로 못 느낀 겁니다.
오늘도 당신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잘 헤아려 보세요.
그것이 당신에게 행운이 될지, 불운이 될지는 당신이 어떻게 상황을 잘 이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우리 모두 21세기 <제인>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