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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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러나 어떻게....'

 

 

평생을 중국집 주방에서 세월을 보낸 건담 두위광.

중식의 대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비가 새는 허름한 가게가 그의 현재다.

70대 두위광에게 찾아온 위기.

그런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를 배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다양한 생각들을 독자에게 던진다.

 

<대장금> 드라마가 한창 인기 있을 때 드라마를 통해 음식에 대한 진정성을 배웠다.

음식이란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마음이 담긴 '약'이다.

기본에 충실하되 먹는 사람의 건강까지 생각해서 만드는 요리는 시든 꽃에 물을 부어주는 것과 같고

물욕에 물든 마음으로 만드는 요리는 건강한 사람도 시들게 한다.

 

"요리는 먹이는 일이다. 무슨 말인 줄 알아?

맛있게 만들어 내는 거, 그걸로 솜씨를 뽐내고 칭찬을 듣는 거... 그런 건 저 아래에 있는 거다. 속이지 않고 좋은 재료를 쓰고, 적당한 값을 받고, 청결하고, 그 마음도 깨끗한 거...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지. 요리는 거기다가 누군가를 먹인다는 마음, 베푼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진심이 있어야 진짜 요리, 최고의 요리가 나온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

요리는 진심이 있어야 최고의 요리라는 두위광의 말은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하는 우리에게, 기본을 잊은 우리에게 짙은 울림을 준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건데,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생략해 버리는 삶을 살고 있는 거 같다.

 

중국집 주방이 세상의 전부였던 두위광은 70이 넘어서 늘 가게로 직진하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겨본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가 처음 깨달아 가는 모습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본 거 같다.

 




건담은 잘 먹는다. 먹성이 좋다는 뜻의 한자어다.

어릴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건담 두위광.

몸으로, 어깨너머로 중식을 배웠던 두위광.

그는 자신이 배웠던 방법으로 가르쳤다. 왜? 그 방법 밖에는 알지 못했으니까...

 

세대 간의 갈등과 실패자의 도전과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 없이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의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게, 적나라하게, 짠하게 그려진다.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났다.

나도 모르게 그려지는 건담 식구들의 이미지가 좁은 주방에서 웍을 돌리고, 화력 좋은 불앞에서 땀을 흘리고, 담벼락에서 담뱃불을 피우며, 좁은 홀안을 우아하게 돌아다닌다.

두위광 만큼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때론 나를 반성케 하고, 나를 응원하게 하고, 나를 위로한다.

 

대충 배고픔을 때우면 그만이라는 나의 식사에 대한 생각이 '잘 만들어 먹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건담 싸부>를 읽는 내내 익숙한 중국집 냄새가 코 끝을 스쳤고, 들어 보지 못한 재료와 음식들이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드라마나 영화로 나온다면 이 음식들과 식재료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본경이 만든 음식과 나희가 제조한 칵테일.

건담 싸부가 만든 중국식 냉면을 먹어 보고 싶다.

 

기본이 무너진 세상에서 고집스럽게 기본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아는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곡비소 같은 사람들이 허울좋게 세워 놓은 '독'만 남은 세상을

두위광과 본경, 원신, 나희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갈 것이다. 조금씩, 느리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중국집과 중국요리가 저 멀리 있었는데

<건담 싸부>를 읽고 나니 바로 코앞에서 가까이 느껴진다.

<건담 싸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편견의 세상을 아주 조금 까발려 준 이야기다.

단지 보이는 것 그 이면의 행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건담 싸부>는 그저 재밌는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히 생각해 봤어야 하지만 외면받은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푸짐한 잔칫상을 얻어먹고 나왔다는 생각 뒤로 뭔가 끈끈한 뉘우침이 함께 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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