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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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어릴 때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

그냥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놀이용 노래로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노래에 담긴 뜻을 여지껏 모르고 살았다는 게 부끄러워진다.

 

<작별>은 이어령 선생님이 미래세대에게 남기는 말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그분의 박식함에 놀라고, 구슬처럼 꿰어내는 이야기의 연결에 놀라게 된다.

<작별>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 노랫말 가사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일 것이다.

나도 지금에야 알게 되었으니까...

 

원숭이 엉덩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그리고 백두산.

이 키워드로 설명되는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꼬부랑길은 정말 읽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4000년 동안 그 많은 외압과 그 많은 외래문화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온, 한국 사람들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원동력이에요. 사랑과 증오, 존경과 멸시, 배우면서도 비하하고. 이런 복합 감정이 원숭이 엉덩이고, 그 빨간 것이 맛있는 사과로 이어진 거죠. 배만 먹던 사람들이, 감만 먹던 사람들이 사과를 먹었을 때의 그 느낌이라는 게 어땠을까요?

 

 

원숭이는 인간과 닮은 동물이다. 그래서 원숭이는 인간 비하를 일컫는 단어이기도 하다.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서양인과 서양문물들을 배우고 익히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표현한다.

그것이 원숭이 엉덩이로 시작되는 노래의 첫 키워드다. 그리고 빨간 사과는 서양의 역사에 중요한 키워드이며 애플로 대표되는 현 세대의 모습도 담고 있다.

바나나는 길다. 우리에게 바나나 이전에는 그렇게 긴 과일이 없었다.

귀하디 귀한 것이었던 바나나는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아마도 모양도 맛도 처음이었던 바나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키워드였는지도 모른다.

기차는 산업 발달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서의 기차는 늘 슬픔을 담고 달렸다.

정신대로 끌려간 언니들과 학도병을 끌려간 오빠들 전쟁통에 기약 없이 이별해야 했던 수많은 슬픔들이 철길을 달렸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종이비행기 노래를 통해 이어령 선생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는 바로 '날아라' 이다.

뜬다는 건 무언가의 조력이 있기에 뜰 수 있는 것이다.

난다는 건 나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 생기고 최고로 높이 떠있는 상태다.

떴으니 날아야 하는데 날아오를 의지를 박탈당하고 있는 거 같아서 속상하다.

이어령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지금 현재를 보고 뭐라고 하셨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방향으로 내가 아는 것들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 버리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의 한정된 생각을 넓혀준다.

<작별>을 읽으면서 대한민국과 그 국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보며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내가 가진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확인하고 깨달은 시간이었다.

 

버려둬가 5G가 되고, 5G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요. 김을 먹고 산모가 미역을 먹는 우리 일상생활 속에 수십만 년 전 채집 문화가 그대로, 버려둔 것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거예요.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세계를 제압하는 거예요.

 

 

우리의 미래도 버려둔 것들을 잘 융합하여 새로운 것들로 창조하는 미래로 만들어 가야겠다.

바나나에 우유를 섞어서 바나나우유를 만들어냈듯이..

 

<작별>을 읽고 나서 "잘" 가와 "잘" 있어. 의 인사말을 다시금 음미해 본다.

무심코 썼던 이 인사말이 이제는 다르게 들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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