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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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쥔 주먹에는 사랑이 없지만 친구 펀치에는 사랑이 있어. 사랑이 가득 한 친구펀치를 구사하며 우아하게 살아갈 때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생이 열린단다.

 

 

검은 단발머리에 가끔 로봇 스텝으로 걷고, 친구펀치를 자랑하는 여학생.

그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선배는 늘 촉을 그녀에게 두고 접근할 방도를 강구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빗나가고 만다.

어둔 밤거리에서 바지를 강탈 당하고, 옥상에서 떨어질 뻔하고, 비단잉어에 맞아 기절하며 세상에서 가장 매운 냄비요리를 먹으며 그녀에게 소중한 책 [라타타탐]을 찾아주기 위해 눈물겨운 세월을 보낸다.

그는 그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처음엔.

뭐 이런 이야기가 다 있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서 조마조마한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밤거리를 혼자 거닐며 낯선 사람과 술을 마시고, 어울리는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강심장일까?

좋아하는 여자를 눈으로만 쫓는,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꼭 사고를 당하는 이 어리버리한 남자를 어떡할까?

요상한 묘기를 부리는 남자.

춘화를 팔려고 하는 남자.

웬만한 남자 찜쪄먹는 여자.

3층 전차를 타고 다니는 도인 같은 고리대금업자. 이백으로 불리는 남자.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들의 등장과 낯선 밤 문화에 걸쳐진 판타지는 생소하면서도 묘한 중독성을 지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걸친 짝사랑 대 행진.

답답한 남주와 도대체가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여주.

어딘가 다른 차원에서 온 듯한 주변 캐릭터들이 요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여름.

헌 책방이 나와서, 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즐거워서, 몇 만권 되는 책들이 즐비한 골목길의 풍경이 참으로 탐이 나서 좋았다.

 

"출판된 책은 누군가에게 팔림으로써 한 생을 마감했다가 그의 손을 떠나 다음 사람 손으로 건너갈 때 다시 살아나는 거야. 책은 그런 식으로 몇 번이고 다시 소생하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지. 신은 나쁜 수집가의 손에 갇혀 있던 헌책을 세상에 풀어줌으로써 다시 생명을 갖게 해주는 거야. 그러니 마음 나쁜 수집가들은 마땅히 헌책시장의 신을 두려워해야 해!"

 

 

내 책방에 고여 있는 책들이 생각나서 내가 나쁜 수집가가 된 기분이었다.

헌책시장의 신이 내게서 가져갈 책은 뭘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읽으며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휘청거리는 기분을 느꼈고

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풍겨오는 책 냄새를 맡았다.

이제는 언제 가 볼 수 있을지 모를 대학 축제의 아련함도 그려보고

코시국의 겨울을 또다시 보내야 한다는 암담함도 잠시 느껴 보았다.

 

이 참 무심한 인간들의 로맨스 판타지는 제목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주는 무언의 압력은 내 마음에 새겨질 거 같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열심히 살라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여자라고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라는 암시 같기도 하고

세월 참 빠르니 청춘을 즐기라는 얘기 같기도 하고

밤은 짧으니 술집 순례를 하려면 부지런히 걸으라는 말로도 들리는 제목처럼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는 누군가의 꿈속을 거닐다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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