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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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죽음에 대한 공포, 신체 절단에 대한 공포, 그리고 가장 매혹적인 자주성의 상실에 대한 공포. 군중이 동요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때부터 개인은 생존이 유일한 목표인 생물의 무력한 세포에 지나지 않는다. 군중이라는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서슴지 않고 희생한다. 세포들은 짓밟히고, 질식하고, 척추가 부러지며, 부러진 늑골에 폐가 찔린다.

 

 

제프리 디버의 캐서린 댄스 시리즈 4번째 이야기는 <고독한 강>이다.

솔리튜드크리크 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비상구가 막힌 곳에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모두가 살려고 서로를 헤치는 광기의 시간. <고독한 강>은 그렇게 시작한다.

 

<옥토버리스트>를 읽다가 집중하지 못하고 팽개쳤던(?) 나는 디버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벽돌 책 <고독한 강>을 잘 읽을 수 있을지, 이번에는 디버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았다.

두툼한 두께의 이야기는 책장을 호로록 넘기게 만들었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내가 예측한 일들은 모두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래서 다들 제프리 디버를 칭송했구나!

동작학 전문가인 CBI 특별수사관 캐트린 댄스.

예전 미드 <라이 투 미>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거짓말을 가려내는 형사에 대한 드라마를 재밌게 봤었는데 캐트린 댄스는 사람들의 동작 언어를 알아내는 기술을 가진 형사다.

하지만 그녀의 실력은 초장에 실수로 범인을 놓쳐버리고 나는 이 생소한 기술을 가진 주인공에게 조금 맥이 빠진다.

음... 이게 다는 아니겠지?

 

물론, 그렇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가는 지능범이 조용히 움직이고, 캐트린 댄스는 심문하던 범인에게 총까지 뺏겨 버리고 정직에 준한 벌을 받는다.

무기 소지 금지. 민사부 소속으로 쫓겨난 캐트린 댄스에게 솔리튜드크리크클럽의 수사를 도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주인공 스타일 너무 구겨지는 거 같은데, 거기다 밉살스러운 포스터는 사사건건 댄스를 못마땅해한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입만 살아 움직이는 포스터는 이야기 내내 신경을 거스른다.

 

"지나가는 사람 몇 명 붙잡고 황당한 소문을 퍼뜨리면 게임 끝이죠. 그게 뉴스를 타고 블로그에 실리면서 산불처럼 순식간에 번진 겁니다."

 

거짓 정보로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범인.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광경은 글로 읽는데도 소름이 돋는다.

거짓말이 어떻게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가는지.

어떻게 멀쩡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자아를 상실하는지.

거짓말처럼 벌어지는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다.

 

외로움과 넘치는 시간을 게임으로 달래는 영혼들에게 그 게임들이 심어 둔 살의.

그것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실현하고 싶어 하는 욕구.

하지만 대부분은 직접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공급이 생긴다. 수요가 있는 곳엔 반드시 생기는 공급.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말 몇 마디로 무시무시한 파괴와 대혼란을 일으키는 것.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

 




하나의 이야기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캐트린 댄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같이 진행된다.

그리고 모두 예상을 빗나간다.

아슬아슬하게.

 

만족을 위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저항할 수 없는 욕구, 근질거림을 잠재우고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죽음과 부상과 피를 구경하는 것이 바로 그의 '겟'이었다.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사람들.

킬러 보다 더한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끔찍했다.

우리가 단순히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 덜 신경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허락한 게임의 시간들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는지 알게 된다면.

단순한 게임으로 치부했던 총 쏘고, 칼로 베고, 폭탄을 터뜨리는 일들이 아이들의 잠재의식을 어떤 식으로 세뇌하는지 알게 된다면.

세상이 말세라고 도리도리만 하지 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제프리 디버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면서 "등잔 밑이 어둡다!"를 외쳐댔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여러모로 내 뒤통수를 세 번쯤 때린 거 같다.

이제부터 제프리 디버를 모두 섭렵할 생각이다.

책장에 담긴 디버의 작품들을 눈에 보이는 곳으로 꺼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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