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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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르테미시아> 이 제목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묘비명이기도 하다.

이름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화가 아르테미시아.

미술 관련 책들을 읽다가 알게 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났다.

그가 살았던 시간대의 시대적 상황과 같이 활동했던 작가들과 아르테미시아가 남성들이 우세했던 세상에서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후원을 받기 위해 한 노력들이 담겨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아버지 밑에서 도제로 그림을 배웠다.

아마도 아버지가 화가였다는 사실 하나만이 그녀가 가졌던 최고의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십 대 때 강간을 당했는데 그 인물이 바로 아버지가 출입을 허가해 준 사람이었다.

타시는 젠틸레스키가 아르테미시아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강간을 당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 딸의 사건을 재판으로 끌고 간 아버지에 의해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모든 것이 부당하게 까발려지게 되었다.

어쩜 그 모든 사건들이 그녀의 그림에 강렬하게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여성화가의 그림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지만 그래서 여성화가의 그림이라고 연결 짓지 못했던 거 같다.

그림 보는 눈이 없던 나에게도 아르테미시아의 그림들은 정말 생동감이 넘치는 강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왕관을 쓴 이 유디트는 마리 데 메디치뿐 아니라 이름이 같은 카리아의 아르테미시아 여왕도 암시한다. 따라서 이 유디트는 고대와 당대의 영웅적인 여성 지도자에게 존경을 바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는 아르테미시아를 대표하는 그림이 되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던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는 분노를 아우르는 비장미가 있었다.

유디트가 목을 자르려는 순간 남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하녀의 모습은 나에게 남성의 세계 자체를 절단 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림 속에서 아르테미시아는 남자들의 세상을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것으로 단죄한 것처럼 보였다.

 

 

21세기에 와서야 페미니즘의 선봉자가 된 아르테미시아.

자신의 지참금을 직접 관리하고 빚까지도 자신이 감당했다.

남편이 있었지만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고, 예술적 능력과 더불어 사업적 재능도 있었다.

그 시대에도 당차게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 당참이 그림에도 표현되어 있다. 그녀가 그린 그림 속 여성들은 모두 '힘'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헤쳐나갈 지혜와 용기가 있는 모습이 그림에 스며있다.

그래서인지 다부진 여성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나에게도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미술사학자로 르네상스.바로크 미술의 연구자이자 오랫동안 아르테미시아를 연구해 온 메리 D. 개러드에 의해 아르테미시아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젠틸레스키라는 이름만 여러번 듣고, 스치듯 그림 한 점씩만 보았던 내게 이 책은 아르테미시아를 좀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이 책에는 아르테미시아의 그림 30점과 그녀와 함께 활동했거나 비교가 되는 화가의 작품 70점이 실려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어떤 화가가 그리냐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시대의 남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성을 그렸다.

아르테미시아는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그렸다.

우리는 상상과 현실 중 어떤 것을 보아야 할까?

 

나는 현실을 보고자 한다.

여기, 아르테미스.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당장이 아니라 먼 미래에 자신이 인정받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찾아 갈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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