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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605/pimg_7368641353436248.jpg)
"모든 것에는 치러야 할 값이 있는 거죠. 저애가 머지않아 그걸 깨달았으면 싶네요."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흥미롭다.
알고 있는 배경들을 다르게 말할 줄 아는 작가를 만나는 순간은 짜릿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알려주는 작가를 만났을 때는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게도 한다.
존재하지만 잘 몰랐던 세상과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열강의 위세 아래서 힘겨운 삶을 살아내야 했던 대다수의 사람들.
세상이 어찌 돌아갈지 모르지만 그 불운한 느낌을 직감으로 감지했던 사람들.
적들이 자신들의 삶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음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갔던 사람들.
그들의 낙원이 그들의 손에 닿지 않도록 높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걸 빤히 바라보았던 사람들.
그러나 현실을 탓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해야만 했던 사람들.
어린 유수프의 삶은 자신에게 동전을 주는 아지즈 아저씨에 대한 그릇된 호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대상인인 그가 어째서 자신의 집에서 밥을 먹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주는 동전만큼 유수프에게 아지즈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열강들이 식민지를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모습이다.
아지즈 아저씨를 따라가게 된 유수프.
그곳에서 만난 칼릴을 통해 자신이 아버지의 빚에 팔려온 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볼모로 그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즉 아버지가 진 빚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가 아지즈 아저씨에게 저당잡혀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빚 대신 거상에게 맡겨진 유수프.
잘생긴 유수프가 열일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낙원.
낙원은 사람이 그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행복 같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마음속에서만 항상 닿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아프리카인만 살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낙원'의 아랍 사람들은 꽤 인상적이었다.
말만 들었던 카라반들의 모습도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여성에 대한 그 당시 사람들의 태도, 느닷없이 나타나 아무나 잡아가는 현실도 백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관점이라서 색다른 기분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이 쓴 한국 사람의 이야기만 읽다가 한국인이 직접 쓴 한국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이럴까.
이런 섬세하고 절제된 표현들이 가지는 압축된 힘이 있는 글을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니..
나의 세계가 좀 더 넓어진 기분이 든다.
변화해가는 세상 앞에서 이제는 청년이 된 유수프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는 이런 여행들에 지쳐가고 있다. 네가 나를 위해 그걸 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조심해라, 너희 둘 다. 칼릴! 너도. 북쪽 국경에서 독일인과 영국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얘기가 있다. 언제라도 독일인들이 자기 군대를 위해 짐꾼으로 쓰려고 사람들을 납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라."
유수프는 돌아갈 곳이 없다.
아지즈 아저씨는 유수프를 좋아한다.
그리고 세상은 이제 전쟁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시대가 가고 있는 즈음 청년이 된 유수프의 앞길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수프의 뒷이야기를 자꾸 추측해 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유수프에게 빠져가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