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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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당연해 보이는 네 가족. 하지만 저마다 당연하지 않은 마음을 지니고 한 지붕 아래 살아왔다.

 

 

열다섯 살 설산에서 조난당한 두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어제의 오렌지.

읽으면서 점점 눈물이 많아졌다.

료가의 상황이 지금 내 엄마를 떠올리게 해서..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료가에게 위암 판정이 내려진다.

고향을 떠나 도쿄 레스토랑 점장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료가에겐 교헤이라는 동생이 있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11개월.

 

가족의 비밀이 있고

주인공이 암에 걸려서

이 이야기는 꽤나 예상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로와의 책들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 고개를 갸웃 거리며 슴슴하지만 감칠맛 나는 이야기를 읽어갔다.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 야다는 간호사가 되어 료가를 담당하고 홀로 죽음의 무게를 짊어진 료가에게 야다는 든든한 어깨가 되어준다.

료가가 첫사랑이었던 야다.

굳건하고 밝은 에너지의 소유자 교헤이.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는 엄마.

어릴 때부터 살뜰히 손자들을 챙긴 할머니.

기회를 준 료가에게 보답하고자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다카나.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성실하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인물들까지도.

 

료가의 몸 안에 있는 모래시계는 지금까지 이상의 속도로 남은 시간을 떨어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담담한 인물들이 소화해 내는 격한 감정들이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 어제의 오렌지.

서른 어느 날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걸 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료가의 모습은 평생 누군가에게 든든한 사람이었던 그의 모습 때문에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간호사인 작가답게 료가를 통해서 죽어가는 환자의 내면을

야다를 통해 그런 환자들의 곁에서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들의 고통을 그려냈다.

 

조난 당했던 산에서 열다섯 살에 어울리지 않게 침착함으로 자신과 동생의 목숨까지 지켜냈던 료가는 태산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라는 생각 앞에서 인생의 뜻을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다.

 

나에겐

료가와 엄마가 겹쳐 보여서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를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는 이야기였다.

 

"엄마, 나 태어나길 잘한 것 같아."

료가는 그렇게 혼잣말하곤, 울음을 터뜨린 엄마를 힘껏, 아주 힘껏 끌어안았다.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료가.

료가를 보면서 참 많은 울림을 받았다.

고요한 태산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료가.

 

누군가 이 길을 걸어왔다. 자신은 그 뒤를 쫓고 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죽는 것과 닮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은 계속해서 삶을 걷다가 이윽고 어딘가에서 그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조금도 대수로울 것 없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이 이야기엔 허세도, 장황함도, 멋짐도, 신선함도 없다.

다만 고요한 삶의 흐름이 있을 뿐이다.

진중한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한 에너지가 막강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이야기 어제의 오렌지.

 

료가가 기억하는 인생의 특별한 순간엔 오렌지빛이 담겼다.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엔 어떤 색의 빛이 담겼을까?

 

담담한 문체에서 폭발하는 감정의 힘을 느끼게 되었던 건 나의 개인적인 마음이 담겼기 때문인 거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미리 생각해 보고 남겨질 사람들의 마음까지 헤아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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