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 생활자 - 도심 속 다른 집, 다른 삶 짓기
한은화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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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삶터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아파트 밖 동네는 방치됐다. 어렵게 어렵게 내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어도 낙후한 동네 인프라를 바꾸긴 힘들었다. 단지 안의 안락한 생활은 집단으로 뭉친 개인들이 투자한 결과였고, 단지 밖의 험난한 삶은 집단이 되지 못한 개인들이 발버둥 치다 포기한 결과였다.

 

 

결혼식장 짓기 프로젝트.

마음이 맞은 연인은 마당 한 뼘이 있는 집을 원했다.

그리고 서촌에 폐가를 샀다. 그곳은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릴 공간이자 두 인생이 하나의 삶을 일궈내기 위한 곳이었다.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오른 이후 서울은 콘크리트 숲이 되었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동네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다.

골목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전유물이 되었다.

골목골목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동네 모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한옥 짓기 프로젝트는 실로 험난하다.

집 하나 짓는 게 그럴 일인가? 싶다가도 이것이 현실이지.라는 체념도 든다.

게다가 그들이 터를 잡은 곳은 한옥보존지역이었다.

 

터를 잡고 설계를 하고, 예산도 짰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3억이면 지을 줄 알고 돈을 모았는데 그 사이 견적은 5억을 넘어갔다.

지하를 파고 싶은데 문화재가 나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어찌 겨우겨우 공사를 들어갔지만 좁은 골목이라 크레인으로 모든 장비와 자재를 날라야 했다.

그래서 <<크레인으로 지은 집>>이라는 유명세를(?) 얻었다.

 

이 책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로 시작해서 한옥 짓기에 뛰어들어 여러 가지 난관을 헤쳐가며 끈기와 인내와 굳건함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커플의 이야기다.

마냥 즐겁고 유쾌하게만 읽을 수 없는 것이 이 이야기 자체가 대한민국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가옥인 한옥 짓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이렇게 어려우면 누가 한옥을 짓고 살고 싶어 할까?

인구는 절벽으로 치닫는데 아파트 층고는 어째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는 걸까?

공간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고 있는대도 불구하고 어째서 집 짓는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한 집을 짓는 걸까?

 

공간에 대한

집에 대한

삶에 대한

그 어떤 철학도 없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콘크리트들이 도시를 점령했다.

그곳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알차게 꾸려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시 모험 같다.

 

 





꿈을 일궈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노력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거 같다.

이 한옥 한 채가 앞으로 더 많은 집다운 집들을 만들어내는 결과가 될 것이다.

어떤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의 삶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두 사람의 한옥 짓기 분투기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집은.

투기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집은.

내 가족의 영혼이 쉬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냥갑 속에서 바둥거리고 사는 사람들만 보다가 이렇게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마당 한 뼘을 구해낸 커플의 이야기는

읽는 내게 숨통을 틔워주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주거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음을 두 사람을 통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내려다 볼일 없고, 이웃의 시선을 느끼지 않고 창문을 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이 자그마한 소망을 모두가 이루고 사는 시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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