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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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코로나의 고삐가 조금 느슨해진 거 같다. 아마도 모두가 열심히 코로나에 걸리기로 약속이나 한 듯.

율리 체의 인간에 대하여는 최초의 코로나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대도시 베를린에서 잘나가는 카피라이터 도라는 남자친구 로베르트와 함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팬데믹이 오고 도시가 봉쇄되는 사태까지 가자 넓다고 생각했던 집은 점점 좁아지고, 로베르트와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고, 도라는 자기도 모르게 시골에 집을 한 채 사버린다.

그리고 어느 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도라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한다.

 

귀촌을 선택한 도라는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점령한 거 같은 도시와 코로나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는 거 같은 시골의 차이를 경험한다.

2미터가 넘을 거 같았던 옆집 남자 고테와의 첫 만남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반갑소." 고테가 말한다. "난 이 마을 나치요."

 

 

영미문학에 익숙한 나에게 독일식 유머는 낯설다. 하지만 그들의 무뚝뚝한 유머에 자꾸 중독되는 느낌이다.

물론 독일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해서, 그들이 느끼는 통일의 후유증이 얼마만큼인지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았다면 이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더 많이 공감했을 텐데.. 그것이 좀 아쉽다.

 

도시와 시골

이름만큼이나 차이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재밌게도 서로가 서로를 무시한다.

촌놈과 도시것들 사이의 대화는 그래서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

마치 같은 말을 하는 데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곳만큼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코로나로 서로 이어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가끔 도라는 삶을 살아가는 데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와는 다르게 도라가 이사 간 브라켄에서는 모두가 알고 지냈다.

도라만 몰랐을 뿐 마을 사람 모두가 도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 생소한 조합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을 어떻게 잘 엮어서 이어가느냐는 바로 사람들의 노력에 달렸다.

 

도라와 고테는 모든 면에서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었다.

같은 방향으로 걷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은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서로를 알아본다.

싸워야 하는 존재 앞에서 비로소 연대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놨다.

세상을 멈추기도 했고, 모두가 얼굴을 반쯤 마스크로 가리고 다니게 되었다.

일상이 사라지고 많은 것들을 자제해야 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극복하고 나아가는 중이다.

 

도라는 바이러스 균주를 제외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생명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데 슬픈 생각이라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 애쓴다.

 

율리 체의 작품은 처음이다.

무심한 문장들이 곳곳에서 무심하지 않게 빛난다.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사람답게 사는 법을 이 이야기가 다시 그려내고 있다.

 

존중과 배려

이해와 감사

관심과 애정

경청과 손길

 

바쁘게 사는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람다움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였다.

팬데믹이 우리를 멈추게 한 것은 이 잊어버린 기억을 다시 되살리라는 뜻이었던 거 같다.

인간답게 사는 것.

그것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법일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마법 같은 단어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고, 그럼에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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