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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영우.최양현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3월
평점 :

포로감시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기에 역사의 파고 속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었고, 그 물결의 압도적인 위력 끝자락에 애처롭게 흔들리는 조각배 같았던 그의 내면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할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손자가 책으로 엮은 이야깁니다.
민간인의 전쟁기록이기에 그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는 책이었습니다.
남방 포로감시원으로 지낸 5년의 기록으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속의 조선인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형과 동생들 대신 군속으로 지원하여 입대한 최영우.
그는 전쟁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군인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안심하며 배를 탔습니다.
2년이면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수송선에 태워져 남방으로 향하던 조선인들에게는 식사로 호박죽이 배급되었습니다.
이때의 기억 때문에 그는 생전에 호박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한 달 만에 육지를 밟은 그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 말랑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생활합니다.
이곳 말랑에 있는 수용소는 제5 분견소라 불리고, 이곳에서 관리하는 포로는 약 오천 명이다.
포로들의 국적은 거의 화란인이고 영국인과 호주인도 섞여 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인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피지배 민족의 비애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부대가 가는 곳에는 보국대 소속으로 징용된 조선 여인들이 반드시 있었다.
개인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이나 보고 들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해서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일본군 부대가 가는 곳마다 위안소가 설치되었고, 수많은 여성들이 그곳에서 몹쓸 짓을 당했습니다.
이런 위안소가 100여 개가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희생이 있었을지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포로들에게 주는 음식도 형편없어서 많은 포로들의 체중이 줄고 건강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의약품도 모자라서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일본군은 그런 포로들의 노동력까지도 악착같이 착취했습니다.
우리가 군복을 입고 군속의 문에 들어선 지 벌써 만으로 두해가 지났다. 약속된 기한이 지났는데도 우리와 교대할 부대는 오지 않는다.

전쟁 막바지라서 보급도 보충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곳에서도 사랑만은 넘쳤네요. 그는 인도네시아인과 백인의 혼혈인 한 여인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이 항복하고 전쟁에 패한 소식이 들리자 모든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일본의 패망은 곧 조선의 독립을 의미했으니까요.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녀는 어떻게 될까요?
일본군으로 복무했기에 일본 패망 이후 그는 불안했습니다.
같은 조선인들끼리 연합군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죠.
그는 싱가포르의 창이 전범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작별 인사도 못하고 그녀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창이 전범 수용소에는 조선인이 육칠백 명가량 있었습니다.
그곳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비스킷과 옥수수 국물이 그들의 식사였으니까요. 늑골이 붙을 정도로 먹을 것을 먹지 못하는 수용소 생활은 고통스럽기만 했습니다.
132번.
그가 귀환선을 탔을 때 매겨졌던 번호입니다.
뒷산을 힘차게 오르던 에너지는 1947년 고국에 돌아오면서 고갈되었다. 한때 사냥개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 젊은이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활달한 청년은 남방의 포로감시원으로 5년을 외지에서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원래 성격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가고자 했었던 싱가포르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두고 온 그녀를 가슴에 묻고 살았을 겁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포로감시원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담담하고 섬세하게 쓰인 그의 글들로 그 당시를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세월을 살아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았을 뿐이니까요...
과장 없는 개인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포장 없는 개인의 삶은 그것 그대로 보일 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또 다른 역사의 이면을 보게 됩니다.
아픈 시대를 묵묵히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