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
에리크 스베토프트 지음, 홍재웅 옮김 / 교양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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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심상치 않은 그래픽노블 스파.

읽으면서도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간다. 이 그림과 이야기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읽고 나서도 머릿속은 바쁘다. 도대체 이 모든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은 그림체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 구분을 해야 하고

매 페이지마다 마주하는 기괴하고 흉측한 그림들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쏭달쏭하다.

그래서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쓰인 대로 읽기로 했다.





최고급 스파.

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파 호텔.

그러기 위해 종업원들은 항상 청결해야 하고,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돼지코를 달고 동료들에게 놀림을 당해야 한다.

이 스파에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신혼부부가 묵고, VIP가 스위트룸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스파 곳곳에는 어둠이 내려앉듯 곰팡이가 창궐하고있다.

무얼 하는지 맨날 바쁜 사장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알아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호텔 매니저는 그런 사장을 짝사랑하며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날만 기다린다.

 

손님들은 스파 곳곳에서 기괴한 현상과 마주하지만 아무도 아는 체를 안 한다.

마치 자신들과는 다른 세상의 것들처럼 보고도 안 보이는 척, 듣고도 안 들리는 척, 알고도 모른 척을 한다.

그렇게 하면 보이고, 들리고, 알게 된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라도 하듯이...

어쩜 최고급 스파 호텔의 약점을 얘기하는 건 자신들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과도 같다는 암묵적 합의 같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가 생각났다.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두 '거짓말'을 하는 그 풍경과 이 스파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른 거 같지만 같다.

 

무관심으로 일관된 손님들.

검게 퍼지는 곰팡이.

돼지 취급받으며 점점 스스로를 돼지로 생각하는 신입사원.

회사 동료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받는 사람은 그 스파에서 혼자 매일 길을 잃어버리고, 길 잃은 사람 눈에는 봐서는 안될 것들이 보인다.

VIP는 점심으로 나온 음식에 불만을 표하고, 화가 난 주방장은 살인을 한다.

그러나 아무도 VIP가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한다.

주방장이 완벽하게 처리했기에.

 

어린 아들에게 스파 경영권을 맡겼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나타나 경영권을 가로채지만 이사 회의에서는 아들이 경영권을 유지하게 만든다.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던 아들은 나이만 먹었지 아직 어린 소년에서 자라지 못했다.

 

이야기를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니 굉장히 찝찝하다.

 

이것은 지금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축약판이다.

무관심, 직장 내 괴롭힘, 세습경영, 갑질, 살인, 무시와 괄시, 가진 자의 횡포, 폭력.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세상이다.

현실에서 지겹게 보아 온 세계가 이 그로테스크한 그래픽노블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포커에 포자도 모르면서 포커판에 앉아 있는 자들은 바로 우리의 모습 같다.

매번 길을 잃고 헤매는 자는 다수의 대중을 말하는 거 같다.

다수결의 원칙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니까.

다수의 대중은 문제를 보았을 때 나서서 해결하기보다는 누군가 나서서 외치기 전까지 침묵한다.

그것이 비겁이라는 걸 알면서도 묻어가고 싶은 것이 인간이니까.

 

스파의 문제점을 보고도 자기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의 모습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라고 고집을 부리는 거 같다.

무관심과 무반응이 곰팡이를 키우고, 최고급 스파를 잠식해간다.

곰팡이가 번져가고, 기괴한 형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침묵해도 음식 타박은 하게 된다.

어쩜 그 음식 타박도 사장이 직접 영접하는 VIP 손님이니까 가능한 거다.

세상은 그런 거니까.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 현실에 맞춰서 살 뿐이지...

 

책을 읽기 전 잠시 훑어보면서 그림들만 보고는 공포와 호러물이 내게 작동하는 원리처럼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줄 책이라고 생각했다.

매운 것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가시는 원리처럼.

책을 읽고 난 내 감정은 버려지지 못했다.

오히려 벼려지고 있을 뿐.

 

지금 나는 최고급 스파에 있지만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시간이라는 걸이 책이 말해주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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