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둠이 걷힌 자리엔
홍우림(젤리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어른들이 아이들을 겁줄 때 말을 듣지 않으면 괴물이 잡아갈것이라고 하지. 그런데 말이야. 진짜로 있어. 나쁜 아이들을 잡아가는 귀신이. 그것은 사람들의 염원을 듣고 와.
귀신 좋자고 잡아가지. 왜냐하면 그런 아이들은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으니까.
경성에 있는 오월중개소는 연극배우로 이름난 바지 사장과 실질적으로 그곳을 운영하는 최두겸과 잡일을 거드는 호가 있다.
두겸에겐 인간에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것들을 보고 듣는 재주가 있다.
그로 인해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사람 외에도 귀신과 원혼과 신들과 영물과 짐승등이 갖가지 사연을 들고 온다.
반골의 상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24년간 여자로 살아야 했던 고오.
부처의 목을 날려버린 담비 동자
잠시 인간의 삶을 엿보고 싶었지만 사랑에 빠진 샘물신
사람들의 염원을 듣고 찾아와 나쁜 아이를 잡아가는 신
두겸에게 자신의 영물 조각 하나를 보은으로 주어 두겸이 평범한 삶을 살수 없게 한 치조.
어째서 매번 폭력과 혐오를 저지르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삶을 망가뜨리고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버리는가?
치조는 용이 될 영물 뱀이었는데 어느 비구니가 인간들을 위해 우물에 봉인해서 인간을 잡아먹는 다려가귀라는 악귀를 잡아먹게 만든다. 몇 백 년을 우물에서 인간이 던진 영혼을 잡아먹고살았던 치조는 영물에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겸이 그 우물에 던져지기 전까지..
두겸으로 인해 봉인된 우물에서 해방된 치조는 이제 여자가 되어 두겸을 찾아왔다.
인간의 몸이 된 치조는 자신의 조각들을 찾을 때까지만 두겸의 신세를 지려한다.
하지만 벼락을 맞고 사방으로 흩어진 치조의 조각 중엔 사악한 기운을 가진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나머지 조각들을 모아서 사람들을 해치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리고 두겸의 코앞으로 바짝 다가선 사악한 조각이 두겸을 납치한다.
이상해요.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 이유로 상처받곤 한다는 것이요.
이 전통 판타지를 읽으며 나는 사라져가는 세상과 시대를 느꼈다.
지금 내가 알던 세상과 시대도 빠르게 미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기에 그것을 깨달아 가는 치조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다.
190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오월중개소라는 골동품 거래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갖가지 생물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현대인에게 무슨 감정을 주었을까?
왜 이 이야기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외래종 판타지만 읽다가 우리 것을 읽으니 마음도 눈도 뇌도 편안하다.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이야기들 앞에서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릴 것들을 한꺼번에 보게 된다.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 확실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 그런 것일 뿐.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만들어 내는 원혼들을 어찌 편히 보낼 수 있을까...
어째서 타인의 불행을 외면한 사람 보다 외면하지 않은 사람에게 불똥이 튀는 걸까?
알 수 없는 인간의 삶과 행동과 말들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영물, 신, 원혼들에 의해서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
어둠이 걷힌 자리엔...
제목이 내용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의 의미를 조금은 알 거 같다.
어둠이 걷힌 자리엔 새롭고, 맑고, 밝은 것들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어둠을 걷히기 위해서 노력한 수많은 생명체의 결정들이 허투루 되지 않게..
우리에게 있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미신으로, 헛짓거리로 사장되고 말았다.
그것이 공존하는 곳 오월상담소.
현실에도 오월상담소가 있어서 억울한 죽음들이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희가 더 이상 신비가 아닌 법칙과 이해의 영역에 있게 된다는 뜻인가보다. 인간과 우리의 관계는 빠르게 새로워지는 중이구나.
변해 가는 세상을 가늠하게 된 치조의 모습이 씁쓸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각종 영물과 신들이 사라져 가는 이 땅에서 잠시 인간으로 머물기를 선택한 치조가 두겸과 함께 어떤 일들을 해결해낼지 다음 편이 빠르게 나와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