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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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기가 아니지만 일기는 나니까.

 

 

박서련 작가의 글은 하나도 접하지 못한 채로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를 먼저 읽게 되었다.

일기를 당당하게 책으로 내다니. 강단 있는 작가일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이때의 나 역시 굴곡진 세상의 '맛'을 온몸으로 견디던 때였다.

지금은 그때 어땠는지 그 그림자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30대는 그때의 울분을 글로 푸느라 늘 고조된 감정 안에서 살았다.

그래서 이 일기는 내게 소설처럼 읽혔다.

박서련이라는 소설로...

 

개인사는 결국 역사가 된다.

지금은 그저 일기에 불과한 글도 수백 년 후에 발견되면 하나의 자료가 되고 나아가 역사가 된다.

개인의 역사를 적은 일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기억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그 일기일 테니.

 

"제가 쓰는 글 중에서 일기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던 작가의 말처럼

박서련의 일기는 소설처럼 읽혔다.

1인칭 주인공 시첨으로.

 

치열했지만 유연하지 않았던 시절.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 봤다.

만약 내가 치열하게 살면서 지금처럼 유연했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일기를 썼지만

내 일기는 나에게 조차도 벽을 쳐둔 일기였다.

그래서 왜 이런 생각을 했지? 여기 이 사람은 누굴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박서련의 일기는 그럴 염려가 없을 거 같다.

일상이 다양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일상도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적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남들에게 일기를 연재할(?) 정도로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어쩌면 가장 솔직한 느낌을 바로 전달하는 데 익숙해진 그녀의 글들이 그래서 사람들에게 바로 가 닿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쓴 소설을 아직 한 권도 읽어 보지 못했지만 왠지 그 이야기들은 솔직, 대담무쌍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기, 여행, 월기.

세 부분으로 나뉜 글들은 가끔은 나와 세대 차이를 느끼게도 하고

나의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왠지 씩씩하고 당찬 느낌 아래로 어쩔 줄 모르는 누군가가 숨겨져 있는 거 같다.

그때는 다 그랬지. 안 그래?

 

 

사실.

일반적인 글보다

() 안에 쓰인 붉은 글들이 나는 더 좋다.

 

나는 예쁘고 산뜻하고 재미있는 것들에 대한

나의 직관을 아끼는 사람이고

나는 내 기준에서 너무 벗어나 있고

나는 내가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제일 싫은 건 이렇게 형편없으면서도 죽고 싶지 않은 너절함이다.

 

 

세상 별거 없다.

사람 사는 건 다 달라 보이지만 다 거기서 거기.

정말 세상이 엿 같을 땐

예쁘고 맛있는 거 먹으면 그 포만감과 예쁨에 마음이 절여져서 어두운 감정들이 사그라 드는 법이다.

예쁜게 먹기도 좋다고 한 말의 속뜻은 그런 걸 거다.

예쁜 걸 먹으면 왠지 더 나은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런 느낌을 유지하다 보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예쁜 건 맛이 좀 없어서 예쁜 맛으로 먹으면 된다.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지저분하고 누가 먹다 남긴 것처럼 보이면 손도 대기 싫은 법이다.

자고로 우리 속담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다.

 

삶의 어떤 지점에선 항상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온다.

그때는 일찍 오기도 하고 중간에 오기도 하며 아예 늦게 오기도 한다.

그 고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그러니 왜 나만 이래?라는 생각이 들 때면 아주 예쁜 걸 먹으며 나에게 포만감을 주자.

결국 잘 먹고 잘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다시 보이게 마련이니까.

 

책을 읽기 전에 본 제목과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보는 제목은 같지만 다르다.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나를 위로하는 일은 예쁜 걸 먹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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