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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숲 - 나의 문어 선생님과 함께한 야생의 세계
크레이그 포스터.로스 프릴링크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나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야생의 영역으로 헤엄쳐갔다.
에세이와 다큐가 합쳐진 이 아름다운 책은 어느 한 페이지도 허술한 곳이 없다.
생전 처음 보는 바다 생물들의 모습과 마치 나무로 빽빽한 숲을 연상시키는 바다의 숲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생전 처음으로 상어의 눈을 보았고, 어린 전복의 껍데기를 보면서 전복이 무얼 먹고 자라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문어가 마술처럼 자신을 변형시키고 자신의 천적인 파자마 상어에게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때론 그 상어를 질식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삿갓 조개는 자기만의 정원을 만들 줄도 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이 책
의 모든 페이지가 경이롭다.
육지에서 살며 바닷속은 들어가 보지도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의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바닷속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생명체를 만나는 기분은 황송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크레이그 포스터의 글은 에세이지만 소설처럼 읽힌다.
그는 자신의 상황와 바닷속에서 경험했던 순간들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고통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적었다.
그가 경험한 것들을 읽으며 나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을 느끼며 우리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생명체와 교감하는 모습을 보는데 부러움과 질투가 동시에 난다.
모든 사람은 야생의 본성을 갖고 태어난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야생 생활은 수렵 채집인의 지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야생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야생 자연의 본질 중 일부를 알고 그것을 우리 정신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케이프타운 근처의 켈프 숲은 사진으로만 보는데도 아주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생명체가 사는 이곳은 위험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365일 잠수를 하기로 마음먹은 크레이그와 어린 시절부터 잠수를 탔던 로스가 친구가 되어 이 켈프 숲을 누빈다.
크레이그는 백과사전처럼 우리에게 바닷속의 신비를 전하고, 로스는 자신이 바다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을 통해 나는 인류가 문명화 되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엿보게 되었다.
그들이 경험한 것들이 온전하게 나에게 닿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들과 나는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서로 이어지는 실을 뻗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화의 결과로 우리는 오래전 모든 생명체와 교감할 줄 아는 능력을 고갈시킨 거 같다.
케이프타운의 바다에서 두 사람은 오래전 지워진 감각들을 하나씩 배워간다.
바닷속 동물들은 그들을 관찰하고(그들은 관찰 당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이 믿을만 한지를 판단했으며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마자 그들에게 곁을 내어 주었다.
그들이 옆에서 헤엄치게 해주었고, 그들에게 다가가 맛보고, 느끼고, 같이 놀아 주었다.
이것은 인간이 바닷속 동물들을 관찰하며 쓴 것이라기 보다, 자신들이 관찰 당한 기록을 적고 있는 거 같다.
바닷속 동물들이 생각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그들은 육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그들이 사는 곳이 달랐을 뿐이지.
#나의문어선생님 을 보게 되었다.
다큐는 잘 안 보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그 다큐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세상은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세계가 더 많은 거 같다.
크레이그와 로스, 그들의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세계를 알지 못한 채로 살았을 거 같다.
또 다른 세상을 알게 해준 그들이, 내가 바닷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바다를 알 수 있게 해준 그들이 고맙다.
아름다운 문장과 경이로운 사진과 믿을 수 없는 그들의 경험 앞에서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언제쯤 그들과 같은 자연교감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