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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 있어요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12월
평점 :
내가 찍은 점 하나가 예상치도 못한 곳과 이어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
어마어마하게 큰 몸집으로 백곰 같기도 하고, 마시멜로 맨 같기도 하고, 베이맥스 같기도 하고, 판다 같기도 하고, 가가미모치 같기도 한 여자가 양모 펠트를 뜨고 있는 도서실.
무섭게 생긴 모습에 비해 몸을 포옥 감싸는 듯한 느낌의 목소리를 가진 사서 고마치씨 옆엔 허니돔 쿠키 상자가 놓여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책 종류를 말하면 엄청나게 빠른 타자치기로 책 목록을 뽑아 준다.
그 목록에는 반드시 요청하지 않은 책과 양모 펠트 인형이 부록으로 딸려 온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눈물을 훔쳤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회사 생활이 떠오르고, 장사나 해볼까? 하면서 기웃거렸던 생각이 나고, 독박 육아로 힘들어하는 동생을 도와줄 생각도 못 했던 철없던 언니였던 내가 떠오르기도 하고, 텅 빈 통장을 바라보며 막막했었던 백수 시절도 생각났다.
그때 이 책을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 역시도 그랬지만 이 책의 인물들도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마음을 지니고 산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 하는 일을 해야만 하고,
사랑하는 아이를 얻었지만 일과 양립할 수 없고, 재능을 알아주는 이도 없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은퇴 이후 취미도, 할 일도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그들이 찾은 곳은 동네 초등학교 옆에 있는 도서실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책을 빌리지만 자신들이 빌린 책보다는 고마치씨가 부록으로 챙겨준 책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
언젠가, 언젠가 하는 동안은 꿈이 끝나지 않아. 아름다운 꿈인 채로 끝없이 이어지지.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그 또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 계획 없이 꿈을 안고 살아간다 한들 나쁠 거 없어.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주니까 말이야.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는 과정이 인연스러워서 좋다.
같은 도서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국 같은 지역을 공유하는 법.
인사를 나눈 적은 없어도 오며 가며 만난 적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인연이 서로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뜨거워진다.
받아. 책 부록이야. 당신한테는 그거.
무심히 건네주는 부록은 다른 길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고마치씨에겐 영감이 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일지를 알아보는 마음의 눈.
따뜻한 문장들이 곳곳에서 내 마음을 달래준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소환되고 이제야 비로소 그 감정들이 녹아내리는 거 같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고,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위로의 말을 <도서실에 있어요>에서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뭘 찾으시죠?"
영혼으로 물어 오는 질문에 사람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고마치씨는 알고 있다. 그들이 찾는 게 무엇인지 그게 어디쯤에 있는지.
책을 읽으며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어디쯤 있는지 깨달았다.
도모카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히로야처럼 생각만 했지 실천하려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
료처럼 미래를 걱정만 했을 뿐. 그 걱정을 현실로 만드는 계획은 없었다.
나쓰미처럼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했기에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고, 억울했다.
마사오처럼 쓸모없이 버려진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
"저쪽에서 먼저 멋대로 제안한 게 아니라, 나쓰미가 먼저 움직였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도, 기회도, 운도, 삶도.
20대부터 60대까지 인생에서 가장 활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주치게 되는 삶에 대한 회의가 서로의 파장으로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이루어 가는지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책을 읽고 "살맛 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직 느끼지 못했던 마사오의 심정을 간접 경험하면서 앞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다져가야 할지를 미리 생각해 본다.
생각 없이 단순하게 읽힐 거 같았던 이야기가 너무 깊게 다가와서 마음이 놀랜 모양이다.
잔잔하면서 슴슴하게 인생을 위로해 주는 이야기 <도서실에 있어요>
정말 모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과 함께 제목에 한 번 더 마음이 간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 준 작가가 고맙다.
내 머릿속에서 뱅뱅 돌던 생각을 작가님이 예쁘게 다듬어 주셨다.
나 역시 책을 읽는 독자로서 내가 만든 책은 아니지만 즐겁게 읽고 열심히 감상을 남김으로써 책의 흐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서실에 있어요>는 내가 추천하는 부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