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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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과 히피 문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앤과 조지.

그들은 1968년 버나드대에서 룸메이트로 만났다.

부유한 백인 가정의 외동딸로 자란 앤과 구석진 곳에서 탈출하다시피 대학에 온 조지.

그들은 앤이 정한 룸메이트의 규칙에 의해 한 방을 쓰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암적인(가끔은 문둥이 같다고 했다) 백인종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고 끔찍하게 여겼다.

 

 

딜레마의 인생을 살았던 앤

 

부유한 부모로부터 받은 모든 걸 수치스러워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했던 앤은 오히려 그들에게 배척당한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앤은 환영받지 못한다. 같지만 다른 이유로.

나는 앤이 왜 그런 삶을 선택해가는지 알 수 없다.

모든 건 조지의 관점에서 이야기되고 있으니까.

조지는 앤에게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고 언제나 두서너 걸음 뒤에서 관찰했다.

그러니 앤에 대해 모든 걸 알았다고 할 수 없을 거 같다.

 





아무도 내게 친구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나한테는 그와의 우정이 필요치 않았다. 그곳에서는 아니었다.

 

 

변두리 마을, 결핍된 가정에서 자란 조지.

대학이라는 탈출구로 빠져나온 뒤 자신을 대학에 발붙이게 한 스승에게조차 연락 한 번도 안한 조지.

앤과 방은 같이 쓰게 되지만 혼자만 아는 자격지심으로 앤에게 거리를 두는 조지.

어쩜 조지는 앤의 모든 행동들을 이해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지에게 앤의 결정과 행동은 모두 가진 자의 특권쯤 되었을 테니까. 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혼자만 지옥에서 빠져나왔다고 느끼는 감정 한 움큼.

세상으로 가출한 솔랜지만큼의 용기가 없음을 한탄하는 감정 한 움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대책 없는 책임감 한 움큼.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어떻게 해야 엄마처럼 살지 않을지를 모르는 마음 한 움큼.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 앞에서 한 선택들은 그녀에게 어떤 자유도 주지 않았다.

무모함이란 조지 인생에는 없는 것이니까.

조지에게 무모함의 대리만족을 주는 사람은 앤과 솔랜지였다.

 

소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신 있게 사는 사람들은 이기적일 뿐이다.

앤이 이기적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60년대와 70년대 미국은 혼란의 극치를 달렸던 모양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성립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 시절.

앤은 온몸을 다해 시대를 불살랐고, 조지는 안락함을 추구했다.

그 안락함 조차도 지켜내지 못했지만.

 

어쩜 앤과 솔랜지가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인생을 살았다면

조지는 숨어서 그 흉내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녀 자신도 극심한 시대의 갈등을 견뎌냈을 것이다.

 

어떤 인생을 답이라고 정할 수 없듯이 앤과 조지의 인생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자신만의 치유법을 안다.

조지는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사랑도, 우정도, 삶도.

 

시그리드 누네즈의 이야기는 감정이 손에 잡히듯 몰입감이 커서 읽는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어떻게 지내요 보다 이 이야기의 밀도가 내겐 더 크다.

그 시대의 마지막 부류.

원제가 <<The last of her kind>> 이다.

 

앤과 조지 세대 이후의 그녀들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들 보다 자유롭고, 그녀들 보다 동등해졌고, 그녀들 보다 평화로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은 앤과 조지 세대가 힘겹게 관통한 시절의 덕이다.

하나의 세대와 하나의 세대를 연결하는 과도기 세대.

그 시절을 다양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경험하게 해준 시그리드 누네즈.

 

 

미국과 다르면서도 같았던 우리의 70~80년대

우리에게도 앤과 조지와 솔랜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온몸으로 관통한 시절 덕분에 그 이후의 그녀들은 조금 더 많은 걸 누리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그녀들을 알게 되었다.

어떤 관습적인 것을 끊어내기 전 온몸으로 거부하고, 질주하고, 노력했던 그 시절의 마지막 부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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