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ㅣ 뒤란에서 소설 읽기 2
V. E. 슈와브 지음, 황성연 옮김 / 뒤란 / 2021년 9월
평점 :
"아무리 절망스럽거나 암울하다 해도 어둠이 내린 뒤에 응답하는 신들에게는 절대 소원을 빌어서는 안 돼."
프랑스 비용이란 작은 마을에 살던 아들린 라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자유롭고 싶었던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 날 숲으로 도망쳐 절대 소원을 빌어서는 안되는 어둠에게 소원을 빈다.
어둠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다.
그녀가 원하는 때에 그녀의 영혼을 가져가는 조건으로.
신비로운 일엔 언제나 대가를 지불해야 하니까.
세상에서 지워진 여자.
그 누구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는 여자.
그러나 수많은 예술가들의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여자.
애디 라뤼.
인간도, 신도 아닌 불멸의 존재.
스스로 자신을 유령이라고 말하는 존재.
300년을 살지만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
오로지 기억만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
불멸이지만 불멸스럽지 않은 존재.
애디 라뤼.
이 이야기를 읽어가는 시간 동안 존재의 의미를 생각했고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불멸의 존재를 그렸고
존재감 없었던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외로움과 상실감은 그 어떤 작품 속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생생함이었다.
모든 불멸의 존재들은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수족을 거느린다.
하지만 애디는 아무것도 없고, 그 누구도 곁에 둘 수 없다.
시야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녀는 잊히는 존재가 되니까...
어둠.
그녀는 그 어둠에게 뤽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아니.
어둠 자체가 그녀가 그린 이미지의 형상이다.
어둠이 애디를 쫓았나, 애디가 어둠을 쫓았나?
난 악마와 거래를 했어.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봐.
헨리는 사랑받기를 원했다.
하나의 사랑에 버림받고, 모두의 사랑을 갈구했다.
어둠은 그에게 '모두의 사랑'을 주었고, 그의 '시간'을 가져갔다.
그리고 헨리에게 애디를 기억하는 '행운'을 주었다.
어둠에겐 '악취미'였지만.
"예술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생각은 기억보다 생명력이 질기죠. 그것들은 잡초와 같아서 항상 자라는 법을 찾아내요."
생각을 심어 두는 법을 배우는 애디.
자신을 기록하는 법을 알게 된 애디.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애디.
이 모든 것이 어둠의 시나리오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모든 판은 짜여 있었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말에 불과했던 애디.
그녀는 스스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간다.
자신만만한 어둠의 신이 미처 간과한 것은 바로 인간의 의지, 인간의 인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의 마음이다.
애디가 사랑을 위해 희생한 걸까?
애디 자신의 기록을 위해 희생한 걸까?
사랑을 꿈꾸는 자에게는 사랑의 희생일 뿐이겠지만
300년을 외롭게 살아 낸 인간의 의지는 고작 사랑 따위로 자신을 희생하진 않을 것이다.
어쩜 애디는 그 두 가지를 다 가졌을지도 모르지...
헨리였던 뤽이였던
애디는 사랑을 남기고, 자취를 남겼다.
신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면서 신을 속였다.
그것은 언제나 게임이니까.
게임은 규칙을 정할 줄 아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항상.
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이젠 모두가 애디 라뤼를 기억할 것이다.
그 어떤 작품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를 만났다.
언제가 애디는 뤽에게서 탈출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불멸의 탄생을 보았다.
애디 라뤼는 존재하는 유령으로 우리들 사이에 남을 것이다.
처음 보았는데 왠지 어디서 본 거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그녀는 바로 애디 라뤼일 것이다.
7개의 별을 지닌 불멸의 존재.
애디 라뤼.
그녀를 읽는 시간은 죽어있던 감각들을 깨어나게 하는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문장들 사이로 흩어졌던 애디 라뤼.
이제 우리에겐 또 다른 불멸의 지혜로운 자가 생겼다.
어디선가 애디 라뤼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어쩜 우리가 그였거나 그녀를 이미 만났을지도 모른다.
만났다는 기억을 못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