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
찰리 돈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릴에 대한 욕망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그의 존재의 문제가 달려 있을 만큼.

 

첫 페이지에서 나는 살인자를 만난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 스릴에 쾌감을 느끼며 위험한 고비까지 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보통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본다.

그냥 그 순간이 살인의 행각을 읽어내려가는 순간보다 더 끔찍하다.

보통의 삶으로 숨어 들어가는 연쇄살인범의 당연한 모습이...

 

로리의 휴가는 이제 막을 내렸다.

 

 

도자기 인형을 복원하는 일이 유일한 취미인 로리 무어.

부서진 인형들을 복원하는 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일일까?

번아웃과 우울증을 피하기 위한 로리의 휴지기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 의뢰되었다.

도자기 인형을 들고 나타난 그는 딸이 아끼던 인형이었다면서 그녀에게 인형의 복원을 부탁한다.

그리고 목이 졸려 죽은 딸의 사건을 재구성해달라고 요청한다.

범죄 재구성 전문가 로리 무어에게 휴가가 끝났다는 보스의 일침이었다.

 

1979년의 앤절라

2019년의 로리

 

 

1979년 앤절라는 여름내 시카고에서 벌어진 여성 납치 사건에 촉을 세운다.

자폐와 강박, 편집증이 있는 그녀는 자꾸 이 사건에 집중되는 것이 싫다.

자신의 병을 알고 자신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남편 토머스는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다는 걸 안다.

신문을 스크랩하고, 자료를 모으고 그녀는 스스로 범죄를 재구성하고 피해자들의 연관성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는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넣게 된다...

 

2019 로리는 의뢰받은 사건 현장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변호사이자 그녀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의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그녀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었던 가석방 후보자의 사건 파일 하나만 남겨둔다.

시일이 촉박하고 무려 40년간 아버지가 담당해온 이 사건은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을 거 같아서였다.

1979년 '도적'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연쇄살인마.

하지만 시체가 없었기에 그는 단 한 명의 살인죄, 아내를 죽였다는 정황증거로 60년형을 받았고, 이제 가석방 담당자들은 그가 충분히 속죄했다고 결론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의 가석방 절차에만 입회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단순한 일이었다.

 

로리 무어.

자폐증에 공황장애와 강박증과 편집증이 있는 그녀는 아버지의 마지막 사건을 살펴보며 아버지와 도적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아낸다.

아버지는 그의 의뢰를 받아 한 여성을 찾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앤절라였다.

도적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그의 아내였고, 로리와 같은 병증이 있었다.

도적은 아내를 죽인 죄로 40년을 감방에서 보냈지만 아버지는 그녀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오랫동안...

 

찰리 돈니를 <수어사이드 하우스>로 만났다.

기발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기억해야 하는 작가라고 찜해두었다.

수어사이드 하우스가 달뜬 느낌으로 뭔가 어수선하게 그려졌다면 이번 신간 <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는 엄청난 이야기를 숨겨 놓고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다.

인상적인 캐릭터였던 로리 무어의 모든 것이 샅샅이 밝혀지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숨도 안 쉬고 읽었지만 리뷰를 쓰는 게 부담스럽다.

로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 기묘한 여성에 대해 알게 된 지금, 점점 커져가는 호기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건 재구성을 시작할 때면 맞닥뜨리는 바로 그 감정. 이제 로리의 정신은 앤절라 미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쉼 없이 달릴 것이다.

 

 

로리의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에 몰려오는 공포와 경악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제 로리는 어두운 심연으로 발을 들였다.

 

너를 구하려고 했어. 그런데 피가 너무 많이 났어.

 

 

치매 환자가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들은 가장 중요한 비밀만은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그 순간에 머물기 때문이다.

 

"살인자들은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

"살인자가 존재하는 한 어떤 시점이 되면 선택이 내려진다. 누군가는 어둠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어둠에 선택당한다."

 

어둠을 선택한 것일까?

어둠에게 선택당한 것일까?

옷들과 매든걸 엘로이즈 컴뱃 부츠를 태워버린 것은 하나의 의식이었을까?

증거인멸이라고만 보기에는 너무 가벼운 추측이기에...

이제 로리는 해리 홀레와 루터의 대열에 합류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홀레와 루터의 어쩔 수 없음과는 급이 다르다.

그들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로리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로리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이제 그녀에게는 레인 필립스만 남았다.

그리고 다크 로드 맥주도.

이것들이 그녀를 버티게 해줄 수 있을까?

 

40년의 간극을 가진 과거와 현재를 오가다 보면 우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다채로운 비밀 속에서 유영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 지도 알 수 있다.

그저 그런 범죄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뭔가 아까운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많이 알아 버린 후에야 이 이야기에 대한 수다를 제대로 떨 수 있을 거 같다.

 

 

* 출판사 협찬 도서. 그러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