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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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외로웠다.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은 저 문장일 거 같다.

외로움...

 

비교적 또래들에 비해 평탄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학자금 대출 걱정도, 집세 걱정도, 생활비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라는 은행이 있었으니까.

그것이 이혼이라는 결별에게서 부수적으로 생기는 이익이었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글이나 끄적이며 살 수 있었다.

'빌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 에겐 이름이 없다.

<<빌리>> 에겐 이름이 있어도.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빌리조차도.

<나>는 작가 자신일까?

 

 

내가 원했던 동거였지만,

내가 우위에(경제적) 있는 관계였지만,

그래서 빌리가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는 그리 생각했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 맘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쓰는 소설들은 형편없었고

빌리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그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어떤 속성, 혹은 어떤 상처, 혹은 어떤 성향이 명확하게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데 있다.

그래서 모텔에서의 "그 일" 이 단지 실수였는지, 아니면 그의 바람이었는지는 <나>가 가진 모호함처럼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나>가 가진 외로움이이고, <<나>>가 선택한 삶이다.

 

 




"너 해본 적은 있냐. 근데?"

"뭘 해봐?"

"진짜로 일이라는 걸 해본 적이 있느냐고." 음절을 하나하나 강조해 발음하면서 그가 말했다.

 

 

여자 손 보다 부드러운 손을 가진 나.

그것은 땀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기 때문에 자연 보습되는 거라고 나는 믿고 있지만

그것이 노동이라는 걸 해본 적 없고, 절실하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일을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내가 가진 핸디캡이라는 걸 나는 모른다.

빌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아등바등 남의 집에 얹혀 살더라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있는 빌리와 모든 것이 풍족해도 이루어야 할 것이 없는 나의 차이는 같이 살아가면서 차곡차곡 서로의 가슴에 쌓여만 갔다.

 

네가 존나 불쌍해서야.

 

 

연애할 때는 몰랐던 사실이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면 보이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혼 사유가 성격차이가 되는 것이겠지.

 

나는 빌리를 아파트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랬다면 그건 내가 그대로 삶의 어떤 면은 결코 보지 못한 채로 늙어버릴 운명이라는 소리겠지.

나는 아직도 혼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위치까지는 왔다.

그 아파트에 계속 살았더라도 그랬을까?

 

"있잖아, 이 아파트에서 나가는 건 좋은 일일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우리 둘 다한테."

 

빌리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그에게서 빼앗은 만큼 내 것을 빼앗아 갔고

내가 그에게 베푼 만큼 내가 인생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만들어 놨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쌤쌤이라고?

과연 그럴까.

 

처음으로 누군가의 집에서 자고 나면 두 사람 모두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을 더 편하게, 동시에 더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함께 친밀감의 울타리를 뛰어넘지만 뒤이어 적나라한 아침 빛 속에서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아침에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이 우정이 어떻게 끝날지를.

그러나 필요에 의해서 그들은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결정을 했겠지.

그때는 그것이 옳았고,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테니까.

언제나 옳았고, 최선이었던 것들은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랬을까?>>로 변하게 마련이지만.

 

 

가끔씩,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려면 살던 집을 태워버리는 방법밖에 없을 때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태워버렸던 거다.

누가 시작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끝이라는 걸 서로 깨달은 게 중요하지.

관계라는 건 그런 거 같다.

헤어질 때라는 걸 알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낼 수 없기에 헤어질만한 구실을 만들어 내는 것.

 

아파트는 그들을 뭉치게 했고

아파트는 그들을 헤어지게 했다.

 

빌리는 자신의 꿈대로 걸어갔고

나는 교열 작업 중이다.

두 사람의 운명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빌리의 작품을 교열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끝없이 고치고, 다듬고,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이 완전해질 때까지..

그때는 어쩜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는 끝까지 나를 드러내지 않을 테니까...

 

고독은 일단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나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복잡한 감정으로 단순하게 읽었다.

이 또한 이 이야기가 가진 알 수 없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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