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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105/pimg_7368641353180171.jpg)
마치 신께서 애초에 거인들이 살 곳으로 이 집을 만들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생각을 바꾸신 것 같다.
'홀'이라 불리는 집. 미궁.
1층은 조수가 들이치는 곳.
나와 나머지 사람만이 존재하는 곳.
나는 조수간만의 차와 여러 홀들을 탐험하며 조각상들을 구경하고 일주일에 한 번 나머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일지에 기록한다.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내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은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는 세계.
홀들로 나누어진 그 세계는 홀마다 조각상들이 있다.
거인 같은 조각상,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조각상, 어떤 건 인간보다 작은 것도 있다.
그리고 그곳엔 앨버트로스도 있다.
이 모호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세상은 왠지 모를 불안과 슬픔을 느끼게 만들었다. 처음엔.
열다섯 명의 인간 중에 살아남은 인간은 나와 나머지 사람뿐.
물고기와 새들만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줄 뿐인 세상.
그 세상을 홀로 끝없이 탐험하는 나는 숫자 대신 이렇게 하루하루를 적어간다.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여섯째 달의 열다섯째 날 기록>
그때,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끝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105/pimg_7368641353180172.jpg)
이곳에 예언자가 등장하고, 16번째 사람이 나타난다.
그가 남긴 메시지를 지워버리고 뜨문뜨문 남은 글자들을 읽는다.
그 메시지를 다 읽으면 나는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세상을 인식한 방식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범한 영향력과 힘을 얻었다.
고요하고 신비로운 세상.
현 세상에서 빠져나간 신비가 모인 곳.
그 홀들에 있는 조각상은 현생의 역사를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가장 순수하던 때를 생각하며, 평온함을 느끼는 순간을 찾아간다면
나에게도 그 문이 열릴까?
피라네시가 살았던 미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나는 아직 그곳의 느낌을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피라네시가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하고, 그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알 거 같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수재나 클라크의 이야기는 아름답다.
이야기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안에 파묻히는 이야기들이 끔찍해야 한다.
끔찍한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세상에 묻혀버렸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안식을 찾을 수 있을 테니..
파라네시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모든 걸 잊고 단순하게 살아가고픈 마음이 든다.
지금 세상은 쓸데없이 복잡하니까...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물이 들이치는 홀들과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조각상들이 어루만져 주고
홀이, 미궁이, 집이
그들을 거둘 것이다. 안전하게...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마다 피라네시가 안내해 주는 미궁을 돌아다니게 될 거 같다...
* 출판사에서 협찬을 받았지만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