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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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내를 견고한 방책 안에 가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은 무자비한 결투에 돌입하게 된다. 도망칠 곳이 없는 결투장 안에서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움으로써 자신이 한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그들 사이의 다툼에 신이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1836년 12월 29일 벌어진 세기의 "결투"

자신의 아내를 강간한 자크 르그리를 고발한 장 드 카루주와 강간으로 고발당한 르그리의 결투였다.

서로 자신의 명예를 위해 결투를 하지만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이날 두 사람 중에 한 명은 죽어야 끝나는 것이 바로 그날의 결투이자 신의 심판이었다.

 

귀족 집안 출신인 기사 카루주와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종기사로서 카루주와 우정을 나눴던 르그리.

그들은 카루주가 르그리에게 아들의 대부를 부탁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

하지만 르그리가 카루주를 제치고 자신들의 주군에게 더 사랑을 받고 빠른 출세 가도를 달리면서 우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르그리는 기사 작위를 받지 못했고, 주군의 총애를 받고 있었지만 카루주는 전쟁에도 직접 참여한 진정한 기사였다.

하지만 카루주는 첫 번째 부인과 아들을 잃었고, 새로 맞이한 부인 마르그리트는 그녀의 아버지가 2번씩이나 프랑스 국왕을 배신한 걸로 유명했다.

국왕을 2번씩이나 배신하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마르그리트의 성격을 좀 더 설명해 주는 계기가 될까?

 

카루주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르그리는 루벨이라는 자와 함께 마르그리트를 범하러 왔다.

루벨은 혼자 있는 마르크리트가 문을 열게 만들었고, 르그리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예상보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마르그리트를 감당하지 못해 루벨을 불러들여서 그녀를 꼼짝 못 하게 하고 육욕을 채웠다.

 

마담, 만약 방금 일어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한다면, 당신에게 오는 건 불명예밖에는 없을 것이오. 남편이 이걸 알게 된다면 거꾸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소.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나도 입을 다물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침묵하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에게만 자신이 당한 이야기를 했다.

중세 시대 여자들은 성폭행을 당했어도, 자신의 남편, 아버지, 또는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범인을 고소할 수조차 없었다.

카루주는 일단 믿을만한 친척들을 소환해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들은 주군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노르망디의 영주 재판에서 시작된 현지 귀족들끼리의 다툼이, 프랑스 왕국 전체를 뒤흔드는 쟁점으로까지 빠르게 비화했던 것이다.

 

피에르 백작은 르그리의 편을 들어주었고, 카루주는 그 판결에 불복해 국왕에게 상고하고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는 형사재판에서 주군이 내린 판결에 불복한 귀족에게는 최후의 상고 수단으로 남았다.

 





작가가 10년 동안 자료를 조사하고 모아서 쓴 이 실제 사건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살아있다.

다른 버전의 이야기들이 사실처럼 전해지고, 아무도 진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날 결투의 결과만이 있을 뿐.

 

진짜 르그리가 마르그리트를 강간했을 수도 있고

자신보다 빠른 출세를 하며 자신의 길을 막고 있는 르그리에게 반감을 품은 카루주가 아내와 공모해서 벌인 일일 수도 있다.

또는 마르그리트가 외도를 하고 르그리를 핑계 댔을 수도 있다.

진실은 결투로 판가름 났지만 그 진위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르그리트가 흔들림 없는 진술을 했고, 르그리가 주군과 함께 어울리며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르그리의 변호사인 르코크는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르그리의 성격에 관한 단서나 개인적인 감상과 내밀한 대화의 일부까지 일지에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이 르그리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상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세기의 결투로 이름 지어졌고, 결국 중세 시대의 마지막 결투로 남았다.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남편의 힘으로 고발하여 그 남편이 결투를 치름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받아야 했던 마르그리트.

그녀에게는 결투가 치러지기도 전에 이미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나이도 있고, 열병도 도진 남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결투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는 그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결혼해서 5년 동안 아이가 없었던 그들에게 그 사건 이후 임신한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합을 지켜봤을까?

시합 날 이미 검은 상복 차림으로 결투장에서 죽음을 대기하고 있었던 마르그리트의 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강간으로는 임신하지 않는다. 는 중세식 사고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강간당하고 그 작자의 아이를 낳았을지 알 수 없다.

마르그리트가 낳은 아이도 카루주의 아이인지 그날 생긴 아이인지 알 수 없다.

그저 고통만이 남을 뿐이다.

 

라스트 듀얼은 결투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계급 체계와 그 시대의 전쟁사와 전반적인 시대상을 알 수 있어 중세 시대를 잘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하나의 이야기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스며있다.

카루주와 르그리의 결투 이야기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저 몇 줄로 요약해져 전해지는 이야기의 실체를 꼼꼼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따라가서 한 편의 시대극으로 엮은 작가의 집념이 대단하게 생각되는 이야기였다.

 

현재 영화로도 상영 중이라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출연 배우는 알았기에 그 얼굴을 떠올리며 읽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중세 시대로는 가보고 싶지 않다.

그 시대의 여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재물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마르그리트는 자신의 삶을 살았던 여자였다.

침묵하지 않고 모든 걸 감수했으니까.

그리고 카루주 역시 욕심 많고, 질투심이 있었다고는 해도 자신의 아내의 말을 믿고 끝까지 모든 걸 걸고 싸웠으니 어떤 점에서는 존경할만한 남자였다고 생각된다.

 

짧지만 긴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죄와 신을 한꺼번에 생각하게 되었다.

신을 믿지 않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신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주었을까?

결투의 결과와 태어난 아이의 삶이 모순되기에 누가 이겼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나는 결론지었다.




* 출판사에서 협찬을 받았지만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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