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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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건 다 종이를 이겨 만든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아무 죄도 없는 사람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걸.

우리 모두 그러지 않니?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루이지애나의 뜨거운 태양과 높은 습도가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든 7,8월 우리의 여름을 생각나게 했고

이야기 속에 표현되는 배경들이 끈적하고 뜨겁게 뇌리에 박혀버렸다.

루이지애나하면 뉴올리언즈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배턴루지가 생각날 거 같다.

그 여름밤도...

 

한 소년에게 전부였던 소녀가 있다.

육상 선수이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명랑하고 즐거웠던 인기 많던 소녀.

그 소녀가 폭력에 짓밟히던 밤

소녀의 집 앞 떡갈나무 위에서 그 조짐을 느꼈던 소년이 있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소년.

그리고 뭔가 단서를 보았지만 일기장에만 적어두었던 사람.

그걸 보고도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

 

강간은 매시간 되풀이된다.

피해자의 머릿속에서.

어느 범죄소설에 실렸던 문장이다.

 

내가 네 명의 용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다.

내 말을 들어주려무나.

 

 

1인칭 시점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독백 같고, 고백 같다.

소년 시절엔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을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된 그가 똑같은 시절을 보내게 될 자신의 아들에게 남기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고백이면서 독백이다.

자신을 닮기를 바라지만 자신보다는 좀 더 나은 남자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른이 되어서도 끝내 해결하지 못한 '감정'에 대해 아들에게 이야기를 하게 한다.

너도 겪을 일이지만 내 실수에서 너는 더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딸의 친구와 바람이 나 가정을 버렸던 아버지를 둔 소년.

사랑했던 소녀가 짓밟히는 순간 그 소녀의 집 앞 떡갈나무에서 훔쳐보기를 위해 쌍안경을 들고 소녀를 기다리던 소년.

무언가 안 좋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예감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책감을 가진 소년.

사랑하는 소녀를 위해 한 모든 행동이 그녀에게 더 많은 상처가 되었음을 깨달은 소년.

그 소녀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녀의 옷차림, 행동들을 따라 했던 소년.

어느 날 갑자기 큰 누나를 사고로 잃은 소년.

그 슬픔을 느끼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어 마주한 누나의 일기장에서 잘 알지 못했던 누나의 비밀과 함께 '그날'의 범인까지 알아버린 어른의 모습을 한 소년.

 

그 짧은 순간 나는 우리 남자들 내면에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과 겁쟁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둘 다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몰랐던 소년.

아버지가 되어서야 모든 감정을 이해하게 된 소년.

그 소년은 자신의 아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었던 실수와 사랑과 상처와 사람들과 고향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자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자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한편으로 너를 최선의 남자로 키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당연히 과거의 나보다 나을 뿐 아니라, 내가 되고 싶었던 그런 남자로 말이야.

나는 우리의 시작이 순조로웠으면 해. 나는 우리 둘이 이 세상 속에서 좋은 남성으로 살아갔으면 해.

 

 

나이 차가 많은 누나들의 삶.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엄마의 삶.

열다섯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린디의 삶.

그들에게 상처를 준 남자들, 그러나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좋은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알게 된 소년은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서야 묵직한 마음의 짐을 느끼게 된다.

딸을 가졌을 때 느낀 불안과는 다른 마음의 짐.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좋은 성장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야 이 이야기가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걸 느꼈다.

주위에 롤 모델이 없었던 소년은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지울 수 없는 실수를 이야기하며 "우리 둘이 이 세상 속에서 좋은 남성으로 살아갔으면 해." 라고 말한다.

이 한 문장에서 나는 벌써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좋아진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래전 영어회화를 들었던 학원에서 쫑파티를 할 때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던 아저씨가 있었다.

결혼한 지 5년이 되었다는 아저씨에게 우리는 물었다.

"아이는 언제 낳으실거예요?"

"글쎄.. 더 준비가 되면요."

"결혼하신지 5년이면 준비 많이 하신 거 아니에요?"

"음...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울 때도 먹이고, 재우고,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동물을 키우는데도 이런 정성을 들여야 하는 데 하물며 인간을 키워내는 일인데 아무 준비 없이 낳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상당히 무례했던 어린 아가씨들의 질문이었지만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그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 말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고 우리끼리는 그렇게 결론 내렸었다.

하지만 살면서 그분의 말씀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어른들은 낳으면 저절로 알아서 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대가족 사회에서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살았던 시절이거나, 온 동네가 누구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를 알 정도로 서로를 챙기던 시절에나 있는 얘기다.

 

마이 선샤인 어웨이. 이 이야기는 그분을 떠올리게 했다.

아마 그분은 좋은 아버지가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마이 선샤인 어웨이의 그 소년처럼...

 

내겐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는 돕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때의 결심이 나라는 사람 그 자체라고 느끼며 내 죄를 목걸이처럼 걸고 살았다.

 

 

성장소설이자 자기 성찰의 이야기이지만 방관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마이 선샤인 어웨이.

이 소설은 이런 이야기다. 라고 단정할 수 없는 품위가 있는 이야기였다.

아들을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겐 다섯 명의 조카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남자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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