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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 수상한 사람들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새 옷을 입고 양장판으로 거듭난 단편집의 특징은 정말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일들을 담았다.
너무 소소한 거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름 돋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진 게이고의 단편들은 앉은 자리에서 호로록~ 읽게 하는 재미가 있었다.
7편의 단편들은 정말 지루할 틈이 없이 읽히고, 읽고 나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자고 있던 여자>
용돈벌이로 회사 동료에게 집을 빌려주던 가와시마.
어느 날 아침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렀더니 모르는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다.
깨워서 내보내려 했지만 어제같이 집에 온 남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왜 내가 아가씨 섹스 상대를 알아봐야 하는 거죠?"
"당신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잖아요. 정 싫다면 여기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당신이 날 여기로 끌고 왔다고 소리칠 거예요."
이 낯선 여자를 자신의 아파트에 끌어들인 동료는 누구일까?
집을 빌려줬던 동료들에게 모두 물어봤지만 그들도 그녀를 알지 못하고, 동료들의 사진을 보여줬지만 그중에 자신이 만났던 남자는 없다는 그녀.
가와시마는 그 여자를 집에서 쫓아낼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의 배포와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러니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열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판정 콜을 다시 한번>
편의점에서 컵 라면을 사갔고 돌아온 집에 강도가 숨어 있었다.
이미 아랫동네 할머니네 집을 털다가 들켜서 도망쳐 온 놈이다.
근데 어딘지 낯이 익다.
그놈도 날 알아 본 모양이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인지 악연인지는 어떤 사정이 있을까?
어떤 상황 때문에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읽어 보면 좋을 이야기.
자신의 잘 못은 전혀 보지 못하고 오로지 남의 잘 못만을 헤아리다 인생을 날로 먹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내 인생은 나의 것.
누군가로 인해 망쳤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나의 잘못.
왜?
인생은 내 결정과 판단의 기로에서 갈리는 것이니까.
<죽으면 일도 못 해>
출근 후 커피 한 잔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에게 커피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게다가 그곳에 시체가 있었다면?
나는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회사는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러니 일은 적당히 제시간에 끝내세요.
그리고 웬만하면 쉬는 날은 좀 쉽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거야 좋지만 거기에 정신이 팔려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달콤해야 하는데>
아내를 사고로 잃고, 혼자 키운 딸마저 사고로 잃은 나는 두 번째 결혼은 혼인신고만 하고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온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신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신혼여행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뜻하지 않은 사고 뒤에 누군가를 의심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방어기재일까?
생각지도 않은 반전이 뇌리를 강타하는 달콤해야 하는데.
"상대방을 생각해서 한 행동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해 톱니바퀴가 거꾸로 돌고 마는 거지요. 그 톱니바퀴를 제자리로 돌리기란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러려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등대에서>
좋은 관계인 친구란 어떤 관계일까?
단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등대에서.
처음엔 덩치 큰 그 친구의 뒤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안전은 그늘이 됐다.
그리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지만 그 여행조차도 혼자 가게 놔두지 않는 친구. 유스케.
그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여행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중간지점에서 만난 유스케에게 등대지기를 소개해 준다.
어쨌든 나와 유스케의 '좋은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과연 어떻게 이어질까?
예전과 같은 관계로?
아니면 전혀 다른 좋은 관계로?
생각할수록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
<결혼 보고>
어느 날 친구에게 편지가 온다.
아무도 모르게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결혼 보고 편지.
그러나 사진 속의 여자는 내 친구 노리코가 아니다!
노리코를 찾아 간 도모미는 노리코를 만나지 못하고, 이상한 이웃을 만나게 되는데...
"듣고 보면 단순한 사건이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힐 뻔했어요"
오지라퍼 친구를 욕하지 마라!
가끔 그 오지라퍼가 대단한 건수를 올릴 수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살인사건.
세상에 완전 범죄란 없는 법이지!
<코스타리카의 비는 차갑다>
공포와 흥분과 긴장 때문에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에 떠올랐다. 어쨌든 우리가 목숨을 건질 가능성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유키코는 여기서 살해되고 마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치안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일본인 부부는 희귀새를 찾아 국립 공원에 가지만
그곳에서 2인조 강도를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부지해서 호텔로 돌아오지만 그들은 결정적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데... 수상한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고, 믿을 사람도 없지만.
찾아보면 안전한 곳은 많고, 믿을 사람도 많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알게 된다.
정말 나의 이웃과 친구가 누구인지를...
추리소설의 대가 게이고의 단편이라 뭔가 사건사고가 난무할 거라 생각했지만
비교적 조용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단편들이라고 생각하며 읽다가 다 읽고 나서야 그 행간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되는 이야기 수상한 사람들.
제목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도 어쩌다 수상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어쩌다 살인자가 될 수 있고, 어쩌다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어쩌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곁을 주지 않는 이웃이어도 내가 힘들 때 가장 큰 의지처가 될 수 있고, 미소 한 번 보내지 않는 동료라 해도 내가 어려울 때 가장 빠르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이야기들은 빠르게 읽히고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짧은 이야기에도 넘치는 반전이 있어 읽는 시간 동안 즐거웠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역시 게이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