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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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석은 벽화 속의 우리나라 사신들을 똑바로 쳐다보는 순간 가슴이 떨렸다. 천사백 년 전에 한반도에서 여기까지 우리의 선조들이 다녀갔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곳은 고향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쓰인 소설이다.

방송국 다큐멘터리 PD인 안희석과 선배이자 역사학자인 현철의 이야기는 쿠쉬나메라는 책을 근거로 페르시아와 신라가 실크로드를 통해 왕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의 먼 조상일지도 모르는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는 희석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희석과 현철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숨겨진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거의 이야기는 페르시아 멸망 직전 왕자 아비틴이 도망쳐 당나라를 통해 신라에 들어오고 신라의 따뜻한 환대 속에 신라공주 프라랑과 결혼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소설 속의 소설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아비틴이 처음 만난 신라의 화랑 죽지랑

당나라에서 만난 의상대사

신라에 와서 만나게 되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비중 있는 사랑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요석궁에서 만나게 되는 아비틴의 배필 프라랑 공주와 설총.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인 페리둔이 만난 혜초와 고선지.

이들의 등장은 역사의 기록속에서 페르시아와 관련있다고 보아지는 부분을 소설에 녹였냈기에 그 진위를 가려내기가 어렵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어찌 보면 정해진 슬픈 사랑 이야기였지만 프라랑의 긴 인내심과 기다림은 이 가을에 참으로 서럽게 느껴졌다.

 

희석은 우리의 역사를 세계사적 연결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것을 한반도 안에만 가두는 우리의 식민지 사학이 원망스러웠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다.

여러 가지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로 이야기를 꾸려가서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란의 신화를 적은 쿠쉬나메에 신라공주 프라랑의 이야기가 있는 거 보면 아주 없는 이야기로 생각할 수는 없을 거 같다.

그동안 우리는 일제 식민지 사학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고, 미국의 문화에 심취해 인디언을 미개인으로 생각하고 중동인을 테러범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이란에 대한서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희석처럼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역사는 시점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소설이지만 이야기를 읽는 동안 역사의식이 고취되는 기분이었다.

아주 먼 시절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 발걸음을 남겼다.

한심한 학문에 빠져서 스스로를 이 한반도에 가둬둔 양반들과 강제로 36년의 시간 동안 한민족의 뿌리를 송두리째 바꾸려 했던 악랄한 식민사관조차도 진취적인 사람들의 발자취를 끊어내지 못했다.

 

우리가 알아내야 하는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에 감춰져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너는 아직도 기록이 있어야 믿느냐? 기록이 없어도 진짜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역사학도라고 본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역사학자들이 주장하지만 중화사상에 물든 중국은 중국의 대표 시인 이태백을 페르시아에 뺏기고 싶지 않은 거지. 그것이 역사의 딜레마야."

 

 

아주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페르시아의 역사까지도 함께 담아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가 페르시아의 구전 동화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고 그로 인해 많은 부분들이 왜곡되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것을 최대한 올바르게 밝혀내는 것이 후세 역사학자들이 해야 할 일 같다.

그러기 위해선 역사를 올바르게 알고자 하는 마음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가을에 읽은 가슴 아픈 사랑 얘기와 새로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이 마음을 설레게 했던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조금 많은 오타가 옥에 티가 되었지만 그것을 눈 감게 해주는 신선한 이야기가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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