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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무엇이든 괜찮아 ㅣ 누군가의 첫 책 3
김정희 지음 / KONG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이젠 본격적으로 내 삶에 외로움을 들이고 싶다.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에게서 오는 외로움이 아니라 오롯이 나만을 위한 외로움 말이다. 내 오랜 동굴을 벗어나 "외로움이 나를 이렇게 성장시키더군요!" 하며 외로움에 맞선 당당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나머지 내 삶을 기꺼이 외로움에 맡겨 보고 싶다.
다섯 남매의 장녀는 모든 걸 다 누렸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 포기한 게 많았을 거라 걸 아는 동생들은 드물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장성할 때까지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그녀는 오랜 시간 가슴에 품어 놓은 <<그림>>을 시작했다.
무엇을 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삶에 '만족'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직접 그린 그림에 소박한 글이 참 여유롭다.
이 책은 읽는 사람들에게 마음에 여유를 준다.
나도 따라가게 될 앞선 선배의 자아 찾기는 그 자체가 감동이다.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도 뭘 하겠다고 생각하고 큰소리쳐놓고도 아직도 그 뭔가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시작이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보다.
막상 시작만 하면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머위는 쓴맛으로 먹는다. 어린잎도 쓰다.
하지만 그 쓴맛을 우려내지 않는다.
쓴맛이 달게 느껴질 때쯤이면 머위의 쓴맛은 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청대추 떨어지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소리 중 하나라니
그 청대추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다 내려놓아도 좋다는 마음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우리 동네도 대추나무를 심은 집들이 많은데 내 귀에도 청대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내 마음도 다 내려놓게...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코로나로 구순의 엄마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까지
담담하고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들 앞에서 자꾸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개인사를 읽어 가는 시간이 내 안에 무엇을 내려놓는 시간인 거 같다.
얼마 전 58세에 친구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큰언니의 글을 읽고
비슷한 연령대의 또 다른 언니의 그림일기를 보고 있자니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의 길이 보이는 거 같다.
큰언니 세대는 또 다른 희생자들이다.
산업화 시대에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야 했던 거의 끝 세대이니까.
이제야 진정 외로울 자격을 가졌고
맘 놓고 여행을 떠날 시간을 가졌고
남에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가졌다.
젊음을 저당 잡히고
위아래 눈치를 보며 하고자 하는 뜻을 가슴에만 품고 살아야 했던 끝 세대.
이제는
큰언니들이 다 해보며 사는 시간을 누리시길 바란다.
세상이 서로에게 문을 닫아거는 시간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 문도 활짝 열리리라 믿는다.
그리고 새롭게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게 될 큰언니를 열렬하게 응원한다.
부족한 그림과 글을 봐주실 낯선 마음에 설렙니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더 부족한 제 마음을 채워주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