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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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만큼 무의미하고 쓸데없고 지성과 동떨어진 행위는 없어요.

 

 

예쁜 여자랑 살면 3년이 즐겁고

지혜로운 여자랑 살면 30년이 즐겁고

요리 잘하는 여자와 살면 평생이 즐겁다는 속설이 있죠.

저는 예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고, 요리도 잘 못하니

우리 랑님 이번 생은 꽝 손인 걸로~ ㅋㅋㅋ

 

자자~

예쁘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정말 맛있는 요리는 사람의 오감을 충족시켜 주죠.

그래서! 마나코는 그 마력으로 남자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차례로 자살을 합니다.

그들의 죽음은 정말 자살일까요?

 

마나코를 독점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리카에게 마나코는 미션을 줍니다.

내가 낸 미션을 완수하면 너에게 콩고물을 줄게!

 

갓 지은 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고 버터 간장밥을 먹은 소감을 얘기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여학교를 다닌 리카는 동성들에게 '왕자님'이라고 불리는 보이시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그녀는 그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마른 체형.

미소년 같은 이미지.

기자에게도 어울리는 폼새다.

여기저기 취재를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리카의 보호 기재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을 인스턴트로 때우며 거의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리카의 일상에 버터가 들어왔다.

 



 


 

 

마나코의 시원한 일격은 읽고 있는 나에게도 그 여파가 따라왔다.

리카가 마나코에게 빠져드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사람을 꿰뚫어 보고, 교묘하게 꼬드기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서 이용당하는지도 모르게 이용하는 마나코.

감옥 안에서도 마나코는 리카를 유혹했다. 버터로.

버터의 맛을 알게 된 리카는 직접 요리를 하게 되고, 점점 사회적인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여태껏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여자로서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을 유지하기 위해 본능은 억누르고 살았던 모든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주는 이야기였다.

 

 

중반 이후까지 그렇게 읽혔다.

버터처럼 부드럽고, 버터처럼 고소하게, 버터처럼 진한 향을 남기며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입에 침이 고였고

끊임없이 배가 고팠으며 끊임없이 사회적 편견에 맞서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마나코의 위력이 내게도 미쳤음이다.

 

 

이 사건은 어디를 잘라도 그 단면에 고독한 남성의 지나친 자기 연민과 여성을 향한 증오가 베어 있다. 피해자를 탓하는 사고방식일까.

 

 

마나코와 사귄 남자들은 거의 나이대가 있었고, 다들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나코의 배려와 그녀의 음식을 사랑했지만 그녀의 존재는 무시했다.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

내 취향에는 안 맞지만 나를 위해주니까 곁에 두는 거다.

이 이중적인 잣대는 버터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리카와 레이코, 마나코

이 세 여자의 어릴 적 상처는 그들을 다 자라지 못하게 했다.

그들이 만난 그 순간 그들은 소녀에서 어른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사실 남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쓸 필요 없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좋아할지도 남이 정해준 기준을 따르고 있었던 거야."

 

 

사회적 "시선"에서 놓여나지 못한 사람들

자기 의지보다는 남들의 '말'을 의지 삼아 살았던 사람들

개성을 버리고 무개성에 동참한 사람들

자신이 당한 만큼 자신도 모르게 되갚아 주며 살았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던지는 많은 질문들이 버터 속에 녹아있다.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 향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진 부조화, 부적응자, 사회적 편견들이 곳곳에서 버터를 태워버리고 있는 이야기.

 

 

읽는 내내 불편했다.

버터가 그려내는 여성상이 너무나 한심해서.

마나코는 그것을 이용했고, 리카는 그것에서 벗어나려 했고, 레이코는 그것에 묻히려 했다.

한니발 렉터처럼 마나코는 리카를 요리했고, 불나방처럼 뛰어든 레이코에게 사악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전지전능함을 가졌지만 마치 모든 자의 죄를 짊어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마나코는 그렇게 사람을 이용했다.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 버터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무리하게 요구하는 잣대에 대해서 까발린다.

여자를 무시하면서도 여자 없이는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라면조차도 끓여 먹지 못하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까발린다.

그들이 여자를 무시하는 이유는 단지 그녀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열악한(?) 이유일뿐.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정면으로 바라본 느낌이다.

우리고 가지고 있는 문제이지만 왠지 그 결이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유연성'이다.

그들에겐 없는 '유연성'이 그들을 더 숨 막히게 하는 게 아닐까?

 

 

버터를 읽으며 버터 간장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식구도 없는 데 갑자기 칠면조 요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나도 나를 만족시키는 나만의 요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누군가를 위해 차리는 게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상차림.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본능적인 문제를 버터처럼 부드럽고 고소하게 녹여낸 버터.

 

 

마나코, 리카, 레이코가 빚어내는 색다른 이야기의 '맛' 이 버터의 매력이다.

비뚤어진 사람과 비뚤어짐을 바로잡아가는 사람과 비뚤어진 것을 바르게 펴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단단한 버터가 갓 지은 밥을 만나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모양 같다.

그리고 그 맛은 모두가 아는 즐거운 맛이다.

 

 

내년 이맘때쯤 재독하고 싶다.

한 번 읽고 땡! 하기 아까운 이야기다.

읽을 때마다 다른 게 보일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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