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이 편지 속에서 나는 너의 것이야. 가든의 표적도, 네 임무의 일부도 아닌, 오로지, 너의 것.

 

 

언제인지 모를 먼 미래

가든과 에이전시로 나뉜 그들은 시간을 차기하기 위한 시간 전쟁을 벌인다.

가든의 블루

에이전시의 레드

그들은 각각의 최고 요원이다.

 

우연처럼 필연적으로 그들은 전쟁터 속에서 서로를 감지한다.

절대로 아무도 알 수 없도록 그들은 시간의 타래 속에 서로에게 편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런 레드의 뒤를 추적자가 바짝 뒤쫓는다.

 

 



 

 

 

레드의 편지는 빨강으로

블루의 편지는 파랑으로

서로의 이름과 같은 잉크 빛으로 쓰인 편지들을 읽노라면

내 자신의 무개성과 무지와 무감성과 마주치게 된다.

 

레드는 잠을 거의 자지 않지만 그래도 잘 때면 어둠 속에 꼼짝 않고 누워 두 눈을 감고서, 눈앞에 떠오르는 청금석을 보고, 혀끝에 느껴지는 붓꽃 꽃잎과 얼음을 맛보고, 귓가에서 지저귀는 파랑 어치의 노래를 듣는다. 레드는 그렇게 '파랑'을 수집하여 간직한다.

 

 

상대가 서로의 조직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흔적을 없애는 레드와 블루의 이야기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간절함을 부여한다.

절대 만날 수 없는 그들

고전적인 편지를 온갖 장치로 교모하게 숨겨가며 각자에게 남기는 방식은 그 어떤 지구상의 편지보다도 간절하고 절절하다.

 

그녀들로 이루어진 그녀들의 세상.

자신의 손 아래서 시간의 타래가 짜인다는 걸 깨달은 블루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든의 승리.

레드를 꼬여내기 위한 블루의 작전이라고 생각하는 에이전시는 역으로 레드를 이용해 블루를 잡으려 한다.

 

내가 사는 이 골짜기를 통째로 삼켜도 허기가 가시지 않은 것 같아. 그 대신 나는 내가 느끼는 갈망을 실로 자아서 너라는 바늘의 눈에 끼우고, 내 살갗 아래 어딘가 꿰매어 감춰 뒀어. 너에게 쓰는 다음번 답장을 그 실로 한 땀씩 수놓으려고.

 

나는 모든 시인이 될 거야. 그들을 다 죽이고 한 명 한 명의 자리를 차례로 차지할 거야. 그래서 모든 시간 가닥에서 사랑에 관한 시가 쓰일 때마다 모두 너에게 바치는 시가 될 거야.

 

 

이 이야기에 실려 있는 방대한 인용들은 주석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석을 읽어도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은유와 비유들 사이로 흐르는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다 주워 담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껏 이토록 서로를 갈망하는 연서를 읽은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동안 읽었던 소설 속 연애편지들은 이제 아무리 잘 썼다고 평가되는 편지라도 블루와 레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끝도 없이 되풀이될 거 같은 그들의 편지에도 마지막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서로 안에 있었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이야기를 다 읽고 제목을 다시 음미해본다.

시간 전쟁을 하고 있는 자들은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한계치를 뛰어넘었기에.

 

이 이야기는 앞으로의 많은 이야기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너무나 색달라서 모든 감각을 깨워서 읽어내야 했다.

마치 레드와 블루의 편지를 입수해서 그 안에 담긴 무언가를 유추해내야 하는 추적자가 된 것처럼.

 

모든 소설의 줄기에서

완전히 다른 줄기를 생성해낸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블루의 손가락 사이에서 레드만 알아볼 수 있도록 꿰어진 새로운 시간의 타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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