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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전행선 옮김 / 리프 / 2021년 6월
평점 :
"죄송합니다만, 환자분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겁니다."
버섯 회사 사장 야코.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가 그가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중독된 독으로 인해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내와 회사 직원과의 뜨거운 정사 장면을 목격한다.
내 마음속을 질주하는 이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어쩌지? 내 아내와 아내보다 열 살이나 어린 그녀의 연인이 정말로 날 독살하기로 한 거라면?
아내는 열 살이나 어린 직원과 불륜 중이고 그와 동시에 그를 죽이려 독을 탔으며 회사까지 장악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새로 생긴 버섯 회사는 최신 장비를 갖추고 그의 사업을 가로채려 하고 있고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를 몸이 되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속절없이 녹아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내 안의 무언가가 거칠게 떨어져 나가서 아래쪽의 차가운 심연 속으로 곤두박질쳐 내려가는 것 같다. 그런 감각이 몇 초쯤 지속한 다음 멈춘다.
멀쩡했다가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몸의 이상 증상.
아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속이고
경쟁 회사는 직원들과 접촉해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그들을 빼내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은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말썽꾼들이고 다혈질이다.
충격적인 소식과 장면을 목격한 날 그는 새로운 경쟁자를 찾아간다.
하지만 사무실엔 아무도 없고 야코는 열린 사무실로 들어가 그들의 최신식 장비들을 보게 된다.
별 볼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의 경쟁자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그의 밥그릇을 뺏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진짜 불행은 시작된다.
시한부 선고와 아내의 불륜보다 더 끔찍한 일은 뭘까?
다혈질 경쟁자들 중 둘이 그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고는 실종된다.
야코는 시체를 치우기 바쁘고, 경찰은 은근히 그를 떠보러 찾아온다.
야코는 이 상황에서 오로지 회사를 구하기 위해 홀로 싸운다.
과연 그는 복수를 하고 회사를 지키는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 어떻게 살아왔어야 하는가? 만약 삶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만약 일주일이 남았다면? 한 달이 남았다면? 난 이런 문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웃픈 상황들 사이로 죽음을 앞둔 야코의 사색들은 지나간 인생들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
나 역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이고, 어떻게 살아왔어야 하는지 죽음이 얼마 안 남았다면 무엇을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야코라고 그가 그런 상황에 빠질 거라는 상상을 한 번이라도 해봤을까.
하지만 상황은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야코는 죽음을 앞둔 사람답게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침착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남자의 모습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다.
핀란드 소설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낯설지 않고 술술 넘어간다.
게다가 철학적이기도 하고, 무려 코믹하기까지 하다.
핀란드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야코의 아이스크림과 도넛은 속절없이 녹아든다.
열정적이지 않지만 열정스럽고, 과도하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과하다.
그리고 고맙게도 반전이 있다.
북유럽 스릴러의 '고요한 맛'
이제 시작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