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나의 책태기를 한 방에 끝내버린 책.

 

4825일 전에 내 딸 레나가 실종되었다. 햇수로 벌써 14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 14년 동안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도록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세무사 마티아스는 14년 전에 딸 레나를 잃어버렸다.

경찰 친구가 호언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레나는 14년 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고, 이후 언론은 레나를 파티 걸로 치부하고 갈수록 선정적인 기사로 레나의 모든 것을 까발렸다. 마티아스는 항의하고, 호소도 해봤지만 언론의 관심에서 레나가 멀어질까 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14년 후 레나와 비슷한 여자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들어왔다는 전화를 받는다.

마티아스는 병원을 찾아갔지만 그 여자는 레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딸 한나라는 아이는 마티아스의 딸 레나와 똑같이 닮았다.

마티아스는 레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가 나에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그래야만 그 일을 잊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

 

 

납치범에게 납치되어 졸지에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 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야스민.

야스민은 자신이 아닌 레나가 되어야 했다.

그 숲속 오두막에서.

창문 하나 없고, 문이란 문은 모두 잠겨 있는 그곳.

공기순환기가 없으면 숨도 쉴 수 없는 그곳에서 야스민은 레나가 되어 똑똑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한나와 그녀의 남동생 요나단의 엄마가 되어야 했다.

아이들은 야스민을 엄마라 부르며 그녀에게 사랑을 갈구했다.

폭행과 강간으로 그녀의 의지를 꺾어 놓은 납치범은 그녀에게 세 번째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완벽한 가족이 될 거라고.





레나, 당신과 나는 같은 배를 탄 거야. 나를 마음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밖에 없어.

 

 

마티아스, 야스민, 한나의 시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이렇게 흡인력 있는 스릴러는 오랜만이다.

독일 스릴러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감정 밑바닥까지를 아주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이는 납치와 감금, 폭행과 강간, 그리고 세뇌에 노출된 인간이 그곳을 탈출해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트라우마에 대해서 야스민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백과사전을 통해 세상을 배운 한나는 모든 것을 백과사전 속 설명으로 이해한다.

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마티아스는 오로지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행동한다.

그 모든 것이 전부 절박하게 다가와서 읽는 내내 심장을 조여 온다.

 

두께를 자랑하는 책도 아니고

요란한 광고도 없는 책이지만 왠지 끌려서 읽었는데 간만에 몰입해서 읽은 작품이다.

 

당신은 우리를 가둘 수 없다. 소유할 수 없다.

이 오두막은 당신의 감옥이다. 결코 우리의 감옥이 아니다.

 

 

한치의 예상도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다.

범인이 밝혀지기까지 범인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게 이 이야기의 묘미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납치당해 자신의 자유와 의지와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의 고통

야스민의 전 생애는 고작 4개월의 감금으로 인해 전부 사라졌다.

끝없이 들려오는 그 남자의 목소리가 야스민을 지배하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이제 빛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 레나. 그녀만이 야스민의 고통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을 이용하려는 언론이 있을 뿐이다.

 

이런 유의 이야기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건 범인이 아니라 바로 언론이다.

카더라 통신이 내뿜는 기사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더하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 속을 다 알 수 없듯

부모 역시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 수 없다.

이야기 한 편에서 우리가 가진 온갖 문제점을 발견한다.

 

마티아스도, 야스민도, 범인도, 레나도 모두 잘못이 있었다.

그 잘못으로 인한 희생양은 누구일까?

 

마지막까지도 범인을 알지 못해서 애태웠고

멀쩡한 사람이 이토록 잔인한 짓을 벌일 수 있다는 것에 경각심이 일었고

정의란 어디까지로 선을 그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끝머리 레나의 이야기가 마지막 뒤통수를 친다.

 

 

내 아이들이 언젠가 내 눈을 통해, 내 설명을 통해 접한 것들을 실제로 대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리란 걸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이 오두막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 희망이다. 내 희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진 힘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한 여성의 위대함도 동시에 '맛' 볼 수 있는 올여름 가장 훌륭한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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