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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 숲속의 삶 ㅣ 웅진 세계그림책 215
필리프 잘베르 지음, 이세진 옮김, 펠릭스 잘텐 원작 / 웅진주니어 / 2021년 4월
평점 :
서두르지 않아도 돼, 밤비. 엄마는 너를 믿는단다.
디즈니판 밤비의 귀여운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나에겐 이 그림체가 조금 낯설었습니다.
귀엽고 밝은 동화적 이미지가 아닌 사실적이고 섬세한 표현의 그림체는 훨씬 우아하고 깊이 있게 느껴졌죠.
한 번의 가을, 겨울과 두 번의 봄, 여름의 삶.
갓 태어난 밤비의 비틀거리는 모습들
엄마를 따라 세상으로 한발 내딛는 밤비의 이야기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게 만듭니다.
온전히 엄마의 품 안에서 자라던 밤비는 여름을 맞습니다.
그리고 좀 더 넓은 곳을 향해 새로운 감각을 느끼며 나아가다 플린을 만나게 됩니다.
또래의 친구를 만나게 된 밤비와 플린은 티티새를 쫓아다니며 즐겁게 노닐죠.
여기는 산기슭이란다.
여기서 더 가면 우리를 보호해 주는 나무들이 없어. 그러니 조심해야 해.
엄마가 앞장설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엄마를 기다리지 말고 숲속 깊은 곳으로 앞만 보고 달려. 뒤도 돌아 보면 안 돼.
우리가 떨어져도 엄마가 나중에 너를 찾아갈 테니까 말이야. 알았지?
아름답기만 한 숲 가장자리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충고는 아직 어린 밤비에게 와닿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비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그런 건 난생처음 봤어요. 그들은 두 발로만 우뚝 서 있었어요. 위풍당당하게.
밤비와 플린을 바라보던 그들은 천천히 기다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들어 올리고는 잠시 멈추었어요.
그 모습은 정말 기이했어요.
탕!
첫 총소리를 들은 밤비와 플린은 숲으로 도망쳤습니다.
잊지 못할 소리였죠.
무사히 피한 밤비는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 동안 엄마와 숲속 깊숙한 바위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밤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 밤입니다...
여름비가 그치고 다시 햇살을 즐기려는 동물들 사이로 또다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밤비가 첫 번째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비가 내리던 밤에 치던 천둥소리와 지금 들린 천둥소리는 다른 것임을 밤비가 깨닫게 되었을까요?
밤비가 눈치채기 전에 가을이 왔네요.
숲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저 노루가 누구인지 알아? 플린이 밤비에게 물었어요
"우리의 아버지들 중 하나잖아."
"아니, 정확하게는 네 아버지야. 숲에서 가장 오래 산 노루. 여러 해 동안 많은 노루가 저 왕자의 자리에 도전했지만 다들 무릎을 꿇고 말았지. 그렇게 숲의 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들의 왕자, 너의 아버지야."
아빠 노루의 늠름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밤비는 가을날 알록달록한 숲에서 숲의 왕자 아빠 노루를 만났습니다.
겨울은 혹독했습니다.
춥고, 먹을 것도 없었죠.
그리고...
그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탕!
밤비는 열심히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독했던 겨울은 가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밤비의 뿔도 자라고 있었죠.
밤비는 몸이 튼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탕! 탕! 탕!
이번에는 그 천둥소리가 밤비의 다리에 닿았습니다...
아픔을 참고 무작정 달리는 밤비는 문득 자신의 옆에서 누가 달리고 있는 걸 알게 됩니다.
바로 숲속의 왕자.
밤비의 아빠 노루가 밤비와 함께 달리고 있었죠.
밤비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려는 듯.
밤비는 안전한 곳으로 피했을까요?
밤비의 상처는 잘 아물었을까요?
엄마도 없는 밤비는 어떻게 숲속에서 살아남을까요?
아름다운 그림은 귀엽고 말랑말랑했던 디즈니의 밤비를 잊게 만든다.
원작 밤비는 인간에 의해 위협을 받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앞선 생태문학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우리는 디즈니 때문에 아기사슴 밤비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밤비가 사슴이 아닌 노루였다는 사실!
원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필리프 잘베르는 연필과 목탄으로 그린 그림에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밤비를 탄생시켰다.
멋진 숲의 풍경과 노루들의 모습이 그래서인지 훨씬 애잔하고 아련하게 느껴지는 밤비.
50X60의 큰 판형에 가득 채워진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숲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을 받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서 밤비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던 그 그림은 이제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밤비보다 더 성숙하고, 강단 있고, 숲속의 왕자처럼 늠름한 밤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밤비를 마주하고 나니
필리프 잘베르가 "빨간 모자"를 각색한 "너의 눈 속에" 가 궁금해졌다.
21세기에 새롭게 재해석된 밤비.
다 채우지 않은 글의 여백이 남긴 깊은 사색은 어른이 읽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동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