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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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갑자기 삶의 옆구리를 '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때때로 윌라는 다른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며 반평생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반평생보다 더 많은 날을 그렇게 보낸 것 같았다. 처음엔 데릭이, 다음은 피터가 앞만 보고 돌진하는 동안 윌라는 뒤에서 그들이 벌려 놓은 걸 치우고 사과하고 설명하며 세월을 보냈다.

 

오랜만에 앤 타일러의 글을 읽었다.

아직까지 활동 중이라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

 

욱하는 성격의 엄마가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집을 나간 날

그날을 그린 이야기는 윌라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그 시절이 향후 윌라의 삶에 어떤 지침을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정 반대의 부모 밑에서 아빠가 아닌 엄마 때문에 조마조마한 어린 시절을 보낸 윌라는 아빠의 성격을 물려받은 듯하다.

 

대학생이 된 윌라는 언어학자가 되려는 꿈을 접고 데릭과 결혼한다.

그리고 션과 이언을 낳고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욱하는 데릭의 성격으로 자동차 사고를 당해 혼자가 된다.

 

피터와 재혼한 윌라의 삶은 평온해 보이지만 아무런 쓰임새 없는 인생처럼 느껴진다.

그런 차에 션의 여자친구였던 드니즈가 총을 맞는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드니즈의 딸 셰릴을 돌봐달라는 이웃의 전화를 받는다.

션은 이미 드니즈를 떠났고, 셰릴과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윌라는 집을 떠난다.

 

잔잔한 이야기 안에서 세상사의 깊은 맛을 보았다.

 

3번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윌라의 모습은 세월을 닮아간다.

윌라의 아버지와 윌라의 모습에서 언뜻 스토너의 모습을 본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늘 자기를 한곳에 놓아두는 삶.

하지만 윌라는 생의 끝자락에서 오롯하게 자신의 삶을 택한다.

 

아니면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걸 시도해 볼 수도 있다.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는 법이니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던 사람은 자신이 내어주던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위안을 받지 못한다.

받기만 한 사람은 주는 법을 모르니까.

하지만.

삶은 늘 음지와 양지의 양면을 동전처럼 가지고 다닌다.

윌라가 자신의 가족에게 받지 못했던 위안과 필요는 셰릴을 돌보면서 그 주변의 이웃들에게서 받게 된다.

가진 게 적지만 서로를 돕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사람들 곁에서 윌라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직도 '필요한 인생'이라는 걸 깨닫는다.

 

나이가 들면 모든 삶에서 뒷전으로 쳐지게 마련이다.

젊은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들은 '염두' 에 없는 삶이 된다.

 

가족의 평온은

언제나 누군가의 침묵과 희생과 이해 위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 침묵과 희생과 이해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제된다.

 

윌라가 자신의 길을 갔다면 동생 일레인과의 사이가 그렇게 멀어지지 않았을까?

어쩜 윌라는 아버지의 길을, 일레인은 어머니의 길을 가는 건지도 모른다.

윌라와 일레인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반 들어 있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본인의 자유의지다.

션과 이언이 데릭과 윌라를 닮은 것처럼.

 

윌라의 인생을 읽어가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그려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여자의 삶이란 어찌 이리도 닮은 것인지...

 

적어도

인생의 후반부는 온전히 내 의지로 살 수 있음을 깨우쳐준 윌라의 선택이 후련함을 남겨준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어디가 나의 길인 건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고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물음표도 없지만

결국 인생은 벌어지는 그대로의 상황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모든 선택은 결국 나의 것이기 때문에.

선택엔 언제나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니까.

 

앤 타일러.

노년의 작가에게 배우는 인생의 한 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는 것이 바로 나의 행복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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